나는 지금 백수다. 글을 쓰고 있다지만 출판한 적이 없으니 따지고 보면 백수가 맞다. 세 번 취업했지만 세 번 모두 그만뒀다. 직장들은 세 곳 모두 언론사였고 마지막 직장에서의 경험을 끝으로 다시 기자로 일할 생각을 접었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요원하다. 어릴 적부터 써보고 싶었던 글을 써보겠다고 했지만 글도 그리 잘 써지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모아뒀던 월급은 점점 줄어들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트북이 망가지면서 몇 달 동안 썼던 글도 날아갔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해봤지만 나보다 어리면서 경력 있는 사람을 원했다. 글도 삶도 막막하다.

  얼마 전 학교에서는 졸업식이 있었다. 가운을 입고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마냥 웃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거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필요한 시험 등을 계속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테니. 이런저런 사정들로 아예 졸업식에 참석할 생각을 접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아직 재학생의 신분이지만 학교를 계속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게 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막함 속에서도 시간은 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지던 이등병의 군 생활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입학식이 진행되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어려움 대신 즐거움이라는 다음 행사가 기다릴 것이다.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에서 앤은 이렇게 말한다.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멋지네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걸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불안함이 아닌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막막함에 좌절하기보다 내일에 대한 설렘을 가져볼 수 있다면 조금 더 나은 미래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런 대책 없이 ‘행복회로’를 돌리는 것은 일견 바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긍정적인 마음이 앞으로 나아갈 약간의 힘을 보탤 것이다.

  몇 년 전 정문 앞 편의점에서 마주친 학우가 생각난다. 어머니와 통화하며 고향까지 갈 차비도 없다며 울던 모습에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건넸다. 그는 편의점을 나서는 내게 울먹이며 고마워했고 고향에 가는 차 안에서 앞으로 살아갈 힘을 조금이나마 얻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은 그도 어디선가 웃는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그때 그 학우를 포함해, 지금 막막함 속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모두 환하게 웃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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