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이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폭로된 사실이 진실임에도 처벌받을 수 있어 내부 고발자를 입막음시킨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존치돼야한다는 의견도 나오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존폐에 대한 법률적 견해는 서로 엇갈리고 있다.

 

  미투 운동으로 불거진 폐지 논의

  우리나라는 형법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처벌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형법 제307조에 따르면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형법 제310조에 의해 해당 사실이 진실한 것으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 정보통신망법 제70조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하지만 미투 운동에 대한 맞대응으로 성범죄 가해자들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함에 따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지난해 4, 법률가 330인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촉구하는 법률가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를 고소하는 것은 2차 가해나 다름없으며 고소의 위협 탓에 피해자들이 선뜻 나서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하태훈(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폭력 피해자들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력과 폐해 때문에 위축된다결국은 고발자가 아니면 드러나기 힘든 내부비리나 폭력이 묻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표현의 자유 보장해야”vs“사생활도 중요해

  법조계에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존폐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016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규정한 정보통신망법 제70조가 위헌법률심판 제청됐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에선 우리나라는 인터넷을 통한 사실적시 명예훼손범죄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비방할 목적이 아니라면 온라인상의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고 합헌 결정 내렸다. 그럼에도 논란은 식지 않고 있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자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론자들은 해당 법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한다는 입장이다. 사실을 적시해도 형사처벌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탓에 각종 내부고발이나 의혹 제기, 실명 보도를 위축시켜 사회의 발전 기회를 상실시킨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 조각 사유로 공익성이 제시돼있다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지 못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위법성 조각 사유가 수사단계에서 적극적으로 검토되지 않고 기소불기소 혹은 유무죄 판단에 이르러서야 고려되므로 형사 범죄의 피의자 자격으로 수사를 받는 위험으로부터 내부 고발자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는 피고소인이 자신이 말한 사실이 진실임을 증명해도 공익성까지 입증해야 해 피의자 신분을 당장 벗어날 수 없다공익성은 사법부조차 심급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달라지기에 처벌가능성을 예측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적절한 요건도 아니다고 일축했다.

  반면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차츰 보완되고 있으며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미투 운동 등 내부고발이 계속되면서 유포된 사실의 공익성을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확대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 측은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의 권고로 지난해 5월 대검찰청에서 성폭력 수사매뉴얼을 개정해 위법성 조각 사유 적용 여부를 면밀히 살피고 불기소 처분을 적극 검토하도록 지시했다법무부에서도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존치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해당 법률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본다. 주거침입죄나 비밀침해죄(비밀장치한 타인의 문서를 개봉하는 범죄)엔 명시되지 않은 사생활 침해행위 유형을 처벌할 근거가 명예훼손죄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적시된 사실이 아무리 진실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숨기고 싶은 과거나 전과기록, 성적 취향 등을 공개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법무법인 공간 김한규 변호사는 공인이 아닌 일반인의 경우, 그들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통해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빠른 인터넷 속도와 익명성으로 온라인상에서의 사실적시 명예훼손 피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유포된 사실에 대해 해명하더라도 이미 훼손된 명예는 회복할 수 없으므로, 이에 대한 형사처벌은 필요하다는 게 또 다른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정완(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온라인상에서 비방 목적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빈번하다사생활이 폭로된 피해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비관에 빠지므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형벌 제재는 부득이하다고 전했다.

 

  민사소송부터 사생활 침해로 축소 적용하는 방안까지

  현재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균형을 찾기 위한 방안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법정형에서 징역형 삭제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변경 위법성 조각사유인 공공의 이익당사자의 법익침해와 관련된 것추가 성폭력 피해사실을 적시한 경우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안 등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특히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형법이 아닌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대표적인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개인 간의 분쟁인 명예훼손을 형법으로 다루는 것은 과도한 처사이며, 당사자 간의 손해배상으로 다루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이유다. 장영수(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명예훼손죄를 형법으로 다루는 것이 과도해 민사소송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만하다면서도 다만 민사사건이더라도 악의적인 명예훼손은 불법행위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지 않아 명예훼손죄를 민사 처리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비판도 나온다, 민사상 손해배상 액수가 극히 적어 명예훼손죄를 가볍게 여길 수 있다는 이유다. 김한규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법원에서 인정하는 손해배상액이 최대 1000만 원 내외이고, 대부분 몇백만 원으로 결론난다이 정도의 금액으로 가해자에게 책임을 추궁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처벌 범위를 사생활 침해로 좁히는 방법도 제시됐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폐지됐을 경우 사생활을 보호할 방법이 없다는 우려에 대한 대안이다. 손지원 변호사는 본 조항을 존치한다면 지금처럼 일반적 평판 보호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생활의 비밀에 한해 축소 적용되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적용여부를 판단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장영수 교수는 실제적 조화의 원칙에 따라 두 기본권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공익 목적의 진실일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되 음해 목적으로 사실을 적시하면 명예를 우선시하는 등 유동성 있는 법 적용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정한솔 기자 delta@

일러스트조은결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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