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대가가 따른다. 더 빠른 속도로 노화해버리는 대가. 그래서 고이 서랍 속에 넣어뒀지만, 아버지가 갑작스런 사고로 죽어버리게 되자 혜자(한지민)는 계속해서 시간을 되돌려 사고를 막으려한다. 가까스로 아버지를 되살리지만 혜자는 그 대가로 할머니(김혜자)가 되어버린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칠순의 몸을 갖게 된 혜자. 이것이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가진 이야기의 설정이다.

  타임리프라는 판타지 설정을 가져온 것이지만, 여타의 타임리프와 다른 점은 아무렇게나 시간을 옮겨 다닐 수 없는 대가가 있다는 것. 바로 이 한 가지 차별점은 <눈이 부시게>가 시간을 다루는데 있어 색다르면서도 깊이가 있게 된 중요한 요인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건 더 많은 가능성들을 만들어주는 능력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그럼으로써 노화해버린다는 건 어떠한 가능성들을 얻는 만큼 잃는 것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걸 말해준다. 드라마는 이것을 혜자의 입을 빌어 이른바 등가교환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등가교환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 뭔가를 갖고 싶으면 그 가치만큼의 뭔가를 희생해야 된다구. 이 세상은 이 등가교환의 법칙에 의해서 돌아가.”

  판타지 설정이란 그걸 통해 현실을 반추하는 방식이다. <눈이 부시게>의 판타지가 할머니의 몸을 갖게 된 스물다섯 청춘의 영혼이라는 점은, 이러한 뒤섞임을 통해 그 청춘과 노년의 시간을 공감시키기 위함이다. 청춘이었을 때는 뛰거나 아침에 일어나는 일 같은 것들이 별 일도 아니게 느꼈던 혜자지만, 할머니의 몸이 되자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와 가치인가를 깨닫게 된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청춘들의 낮 시간 동안 노인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혜자는 비로소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할 게 별로 없는 노인들은 효도원같은 효를 빙자해 물건을 팔거나 보험을 들게 하는 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동시에 혜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왔던 청춘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깨닫는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백수 아닌 백수의 삶에 자괴감마저 느끼며 살아가던 청춘들의 현실. 그 역시 아나운서가 꿈이었지만 실상은 에로영화 더빙 아르바이트를 해야했던 현실을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그래도 할 게 없는노년의 시간보다, ‘할 수는 없어도그나마 젊다는 가능성 하나를 가진 청춘의 시간이 훨씬 낫다는 걸 절감한다.

  하지만 어쩌면 가능성을 모두 갖고 있지만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청춘의 시간이 더 고약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준하(남주혁)의 삶이 그렇다. 어린 시절 폭력적인 남편 때문에 엄마는 도망쳤고, 자신을 돌봐주던 할머니는 아들에게 평생 돈을 뜯기다가 결국 돌아가셨다. ‘없는 편이 나은 아빠는 그렇게 준하에게 미래나 꿈같은 단어를 지워버린다. 이런 청춘의 시간이 노년의 시간보다 나을 게 뭐가 있을까. 그래서 그는 자신을 조물주가 의도한대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만들어진 에러라고 여긴다.

  <눈이 부시게>는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청춘과 노년이 서로의 시간을 들여다보고, 껴안고 보듬으며 위로한다. 나이 들어 할 게 없는 노년과 젊지만 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청춘. 그래서 마치 사회적 에러처럼 치부되지만 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들인가를 말하고, 선택은 대가를 요구하지만 어떤 대가를 치룰 만한 선택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어쩌다 에러처럼 생겨났지만 아름답게 빛나는 오로라처럼.

 

정덕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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