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원고 제의가 왔을 때 망설였다. 고대생도 아니고, 고대신문 내부사정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타 학보사를 비평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다만, 이 코너의 기획의도를 생각한다면 마냥 좋은 이야기만 써놓을 수도 없는 까닭에, 비판 몇 줄을 겨우 끄적거린다. 대학언론이라는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으로서, 또 편집을 고민하는 한 명의 편집인으로서, 이 부족한 글이 고대신문에게 건전한 비판이 되기를, 그저 공격으로만 다가가지 않기를 바란다.

  ‘강사법 논란부터 사실적시 명예훼손논쟁까지, 지면은 내용적으로 풍성했다. <고대신문>의 이번 호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었다면 기계적 중립이다. ‘개설과목 감소강사법을 연결한 기사가 대표적이다. 두 주제를 연결 짓는 것 자체가 이미 상관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것이다. 의심하는 자는 입증의 책임을 져야한다. 그러나 기사는 강사법의 여파라고 주장하는 쪽과 학교 측의 주장을 기계적 중립으로 담으며 마무리한다. 읽는 이에게는 찜찜한 일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기사 역시 그렇다. 양 측의 의견을 기계적으로만 담고 있을 뿐이다.

  현상은 미러볼에 가깝다. 미러볼이 무수히 많은 작은 거울 조각으로 이루어진 구체이듯, 현상은 여러 주제와 화제로 만들어진 다면적 의미체이다. 특정 현상에 대해 서술한다는 것은 특정한 거울 몇 개에 대해 쓰는 것이다. 중립은 양 축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중립의 본질은 이분법적이며 다면적 의미체를 평면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중요한건 사실을 추구하는 것이지, “누구는 이렇게 말했는데 반대쪽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가 아니다.

  단순한 기계적 중립이 건전한 공론장 형성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뉴스의 시대>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언론은 중립을 추구하며 사실을 던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 좋은 편향을 추구해야 한다며 언론의 편향성을 긍정했다.

  학내에서 학보사는 정보 제공의 독점적 지위를 가진다. 그게 학보사의 좋은 편향의 추구를 어렵게 한다. 그러나 기계적 중립좋은 편향의 추구’, 그 사이에서 무엇이 건전한 학내 공론장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고대신문>이 찾을 대답을 기다린다.

 

이상환 성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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