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깨어진 싱거운 관계들의 이야기가 왕왕 들려온다. 사람과 사람 간의 뻔한 변주곡에 지쳤다면 어디로 발길을 옮겨야할지 막막할 터다. 신선한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동대문의 장프리고가 답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에서 내려서 3분가량 걸으면 골목 저 편에서 냉장고가 늘어서 있는 특별한 가게가 나타난다. 비밀스럽게 냉장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색색의 빛이 가득한 아늑한 칵테일 바가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제가 술 먹을 때 과일안주를 좋아하는데, 어딜 가도 제대로 예쁘고 신선하게 과일을 내 주는 업장이 없더라고요.” 사장 장지호(·33)씨가 가게의 컨셉을 과일로 정한 이유다. 가게이름 장 프리고는 사장님의 성인 과 냉장고를 뜻하는 프랑스어 프리고를 합친 것이다. “프랑스 예술가 이름 같지 않나요?” 2층으로 올라오면 과일 하나씩이 좌석마다 놓여있다. 해당 테이블의 이름을 알려주는 표식이다. 주문을 하려면 공중전화기를 이용해야 한다. 무슨 칵테일을 주문할지 정한 후 백 원짜리 동전을 넣고 기다리면 이내 저편에서 묻는다. “어떤 테이블이세요? 뭘 주문하시겠어요?” 삼각 프리즘 조명에서 쏟아지는 오묘한 무지갯빛은 안고 있는 고민이 무엇이든 간에 털어놓을 것 같게 만든다. 흔들리는 불빛 아래 소곤소곤 얘기가 오간다. 따뜻하고도 몽글한 분위기 속 당신의 옆에 있는 이를 한층 더 믿게 된다. 시그니처 메뉴인 과일 플레이트와 눈이 즐거운 칵테일들은 이야기를 상큼하게 만들어준다. 슈가파우더가 뿌려진 플레이트는 키위, 사과, 딸기, 바나나 그리고 패션후르츠가 골고루 올라가있어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광희문 연가, 별 헤는 밤 ddp 등 칵테일들의 심상치 않은 이름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지역적인 연고를 일깨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광희문이나 ddp의 이미지를 차용해 지역과 융화되는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칵테일 끝의 계피가 은은히 타들어갈수록 깊어가는 이야기에 위로는 짙어진다. 혼자와의 싸움에서 지쳐 외롭고 막막한 당신이 새로이 일어날 힘을 얻을 수 있기를, 어제보다 하루만치의 허물을 벗은 자신의 내공을 믿기를 두 손 모아 바라본다.

 

이다솜 기자 ro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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