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개장, 갈비탕, 함박스테이크··· 이전까지는 식당에서 사 먹거나 직접 재료를 사서 요리해야 먹을 수 있던 음식들을 이젠 끓는 물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먹을 수 있게 됐다. 레토르트 식품의 등장으로 현대인의 식사는 더욱 저렴하고 간편해졌다. 본래 레토르트 식품은 음식을 오랜 기간 보존해 먹기 위해 개발됐지만, 오늘날의 레토르트 식품은 종류마저 다양화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편리하고 저렴해···전성기 맞은 레토르트 식품

  우리에게 친숙한 즉석카레, 짜장뿐 아니라, 합성수지로 만들어진 용기에 담긴 즉석 죽 등도 레토르트 식품에 포함된다. 이러한 레토르트 식품은 긴 시간 동안 저장이 가능하고, 무게도 가벼워 유통과 휴대에 편리하다.

  레토르트 식품의 인기는 가정간편식(Home Meal Replacement, HMR)시장의 성장과도 맞물려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7년 발표한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에 따르면, 가정간편식 시장은 연평균 20% 이상 성장하며 8000억 원의 규모였던 2010년에 비해 2017년엔 3조 원대로 커졌다. 가정간편식 중에서도 레토르트 식품 시장의 성장세는 가장 두드러진다. 미디어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의 ‘2018년 상반기 FMCG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레토르트 식품의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30.1%로 전체 식품군 중 가장 높았다. 레토르트 식품을 구매하는 이유로는 간편해서26.4%로 가장 많이 답했으며, ‘직접 요리보다 저렴해서18.4%, ‘음식 할 시간이 없어서18.1%로 그 뒤를 이었다. 이은희(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 어머니 세대에 비해 음식을 직접 요리해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많이 사라졌다앞으로도 효율과 간편함을 추구하는 사회 풍조가 확산되며 우리 밥상이 레토르트 식품으로 점차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레토르트 식품 시장이 급성장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1인 가구의 증가가 지목된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71인 가구는 1년 사이 약 20만 가구 증가해, 전체 가구 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인 28.6%를 차지했다. 류시현(배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는 혼자서 요리할 여건이 안 되는 독거노인과 이혼 가구에게 레토르트 식품의 간편함은 주된 구매 요인이라며 직접 식재료를 사서 요리하는 것보다 레토르트 완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자취생들에게 레토르트 식품은 필수템으로 각광받고 있다. 2년째 자취 중인 유시현(22·) 씨는 식사거리를 찾다보면 이삼일에 한 번씩은 꼭 레토르트식품을 이용한다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하기엔 웬만한 저가식당보다 맛도 뛰어나고 종류도 다양하다고 밝혔다.

 

  레토르트 식품, 다양성 더해 진화하다

  국내에서 생산된 최초의 레토르트 식품인 오뚜기 3분카레는 레토르트 공법으로 번거로운 조리과정을 단축했다. 3분카레의 성공을 바탕으로 오뚜기는 ‘3분하이스’, ‘3분짜장‘3분시리즈를 추가로 출시했다. ‘3분 시리즈20년간 20억 개에 이르는 판매량을 기록해 인기를 이어갔다. 오뚜기 홍보실 강대위 대리는 소비자들이 선호하지만 만들기엔 번거로웠던 카레를 즉석에서 아무 때나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와 닿은 결과라며 고도의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레저열기와 핵가족화가 심화됐던 1980년대 초 제품을 출시한 것도 성공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짜장·카레 등의 덮밥류가 과거 레토르트 식품의 대명사였다면, 최근에는 더욱 다양한 요리들이 레토르트 공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작년 12풀무원식품은 한국의 대표적 전골요리를 레토르트 식품으로 개발한 찬마루우거지감자탕찬마루얼큰동태탕을 출시했다. GS리테일 또한 레토르트 찜요리 오모리김치돼지찜오모리김치고등어찜을 편의점 상품으로 출시했다. 박성우 농림식품축산부 식품산업정책과장은 최근에 새롭게 부상한 탕·찜류 레토르트 식품군의 매출이 과거 레토르트 식품의 주류이던 짜장·카레 등 덮밥류를 크게 앞지른 상태라며 시간적인 편의성 위주로 소비되던 레토르트식품이 제대로 된 식사를 대체하는 위치로 격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토르트 식품의 고급화 또한 주목할 만한 변화다. 작년 6월 오뚜기는 프리미엄 레토르트 브랜드 엔조이 유어 밀(Enjoy your Meal)’을 출시했다. ‘엔조이 유어 밀의 대표 상품인 프리미엄 카레 3종은 기존의 3분 카레보다 4배 정도 높은 가격대의 고급 레토르트 카레다. 국내산 통 닭다리와 고급버섯 등의 재료들을 사용해 일반 레토르트 카레에 비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는 것이 업체 측의 설명이다. 류시현 교수는 영양 함량과 맛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준이 까다로워지며 레토르트 식품도 단순한 간편성 이외의 강점을 모색한 것앞으로 레토르트 식품은 일반 가정식의 대체에서 그치지 않고 소비자의 복합적 니즈를 반영한 비건식·환자식 등으로도 확장될 것이라 말했다.

  조리식품만이 레토르트 공정의 대상이 아니다. 레토르트 식품 제조 전문기업 아침주식회사2년간의 자체연구 끝에 계란과 고구마 등의 자연식품을 레토르트 공법으로 가공한 제품을 출시했다. 아침주식회사 문경덕 대표는 시중에 유통되는 훈제란의 경우 훈연과정에서 발암물질이 포함되기 쉽고 제조환경도 비위생적인 경우가 많다무수분공법인 레토르트 공법을 활용하면 재료 고유의 수분이 살아있을 뿐 아니라 보존목적의 첨가제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계는 극복하고 장점은 극대화

  완전멸균을 통해 저장성을 극대화하는 레토르트 식품은 특수한 공정과정을 걸쳐 완성된다. 레토르트 식품 제조과정 중 조리된 음식은 공기 중 산소로 인한 음식의 변질을 막기 위해 차단성이 좋고 튼튼한 다층포장재 속에 공기를 완전히 빼내어 밀봉한다. 이렇게 밀봉된 음식은 고압살균솥(레토르트)에 넣어 110~120정도의 온도에서 10~40분간 가열시키는 과정을 걸친다. 정명수(이화여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식중독균 이외에도 내열성이 강한 포자형성균까지 전부 죽이기 위해선 고열에서 장시간 가열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며 이러한 과정을 끝내면 상업적 멸균 상태가 돼 상온에서 1년 이상 장기간 유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미 조리된 음식을 고온에서 살균하는 과정에서 지방·전분·당 등 음식 원래의 조직이 파괴돼 본연의 맛과 풍미가 손상된다는 지적도 있다. 정명수 교수는 레토르트를 이용한 고온가열처리 과정은 단백질과 아미노산의 과도한 열분해를 가져와 육·수산·과채류 원물 고유의 맛, , 색상이 손상된다열에 약한 비타민 등의 일부 영양성분도 파괴될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공정과정에서의 불가피한 품질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기업들은 저마다의 독자기술을 개발해 품질향상에 힘쓰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재료별로 가열시간을 달리해 내용물의 풍미와 식감을 최대한 살리는 분리살균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이에 대해 포장 하나에 모든 재료를 담아 한꺼번에 음식을 조리하는 기존의 레토르트 공법과 차별화를 둔 것이라며 원재료의 맛뿐만 아니라 원물감도 보존돼, 냉장신선식품과 비슷한 풍미를 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독자 개발한 원물 조직감 제어기술과 열처리 공정시스템을 통해 품질향상에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정과정의 한계는 극복하고 장점은 극대화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에 힘입어, 앞으로도 레토르트 식품은 현대인의 밥상을 책임질 적임자로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글ㅣ박진웅 기자 quebec@

일러스트 | 장정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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