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잔에는 용도가 있다고들 말한다. 와인 잔에 와인을, 커피잔에 커피를. 이유가 있다고들 하지만 평생 한 액체만을 담아야 하는 잔의 일생은 공허하다. 하지만 을지로 3가에 위치한 카페 에 정갈하게 놓인 잔은 집는 사람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잔으로 재탄생한다.

  메뉴를 고르기 전에 음료를 담고 싶은 을 고를 수 있는 것은 이 카페만의 특색이다. 빛 좋은 형광등 아래 모양도 색도 모두 다른 수십 개의 잔이 저마다의 개성만큼 환하게 빛나고 있다. 마치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듯 어쩔 땐 순박하게, 또는 강렬하게 갈 곳을 잃은 두 눈을 선명히 간지럽힌다. 런던 유학 시절부터 꾸준히 잔을 수집해 온 사장 루이스 박(본명 박재형, ·48) 씨는 잔을 고르는 행위를 인간과 사물이 인연을 맺는 것으로 설명한다. “모든 사물은 누구에게 어떻게 쓰이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져요.”

  왠지 모르게 끌리는 잔을 고른 다음 어떤 공간, 어떤 자리에 앉아 마실지 정하는 것도 행복한 고민이다. 벽마다 무늬와 빛깔을 달리한 벽지와 어느 하나 통일된 게 없는 탁자와 의자가 각각의 공간을 극명하게 다른 세계로 만들고 있다. 잔이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비치는 잔잔한 햇빛을 느끼며 즐기는 라떼 한 잔, 루프탑에서 초봄의 서늘한 공기를 안주 삼아 즐기는 와인 한 잔, 이 모든 생각과 감정이 카페 이 만들어낸 공간에서 펼쳐진다. ‘인간과 사물이 인연이 되고 공간을 만나 새로이 태어난다는 카페의 테마가 실현된 순간이다.

  박 사장은 손님들이 선택한 모든 커피가 그들만의 커피라고 생각한다. “카페를 찾는 손님들이 잔을 고르면서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직접 고른 잔에 담겨진 커피는 저마다의 삶에 그윽한 향을 더하고 있다.

 

글ㅣ이선우 기자 echo@

사진ㅣ한예빈 기자 l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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