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 정경대 교수·행정학과
김태일 정경대 교수·행정학과

 

  3월 초 사립유치원장들이 회원인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 투명한 회계 공개를 위해 국가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을 사용하라는 교육부 지시를 거부하면서 유치원 개원 연기 투쟁을 선언했다. 뜻밖으로(?) 강경한 정부대응에 곧바로 꼬리를 내렸지만 강행되었다면 큰 혼란이 초래될 뻔했다. 이 사태는 작년 국정감사에서 다수의 사립유치원장이 정부가 지원하는 유치원 운영비를 명품가방 구입, 해외여행 경비처리 등 사적으로 사용했음이 드러나면서 시작되었다. 국감 발표 후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했다. 그 내용이 바로 에듀파인을 사용함으로써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적인 용도의 예산 사용이 있으면 엄벌에 처한다는 것이다. 비록 유치원은 정상적으로 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사립유치원장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막대한 정부 지원을 받는 만큼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적인 용도의 예산 사용을 금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게 들린다. 그런데 왜 사립유치원장들은 반발할까? 자기 이익만 챙기는 철면피들이라서? 개중에는 정말 양심 불량인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건전한 상식(!)의 소유자들이다. 그런데 대체 왜?

  사립유치원에 정부 지원이 이뤄진 지는 10년이 채 안 된다. 그전까지 사립유치원은 사설학원이나 진배없었다. 개인 돈으로 땅 사고 건물 지어서 운영했다. 그래서 수입도 오롯이 원장 맘대로 사용했다. 정부는 2012년부터 유치원을 공교육에 포함했다. 그래서 원비를 지원했고 그에 따라 유치원의 신분도 원장 개인 소유에서 비영리 학교로 옮겨졌다.

  법적으로 따지면야 비영리 학교가 분명하니 예산의 투명한 공개와 교육목적 외 사용 금지가 지당하다. 하나 세상일이 형식논리로만 밀어붙일 수는 없는 법이다. 애초에 사재를 털어서 유치원을 설립한 까닭은 유아교육이라는 좋은 일도 하면서 제법 수익도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부가 원비를 지원하므로 원장 월급 외에는 수익을 가져갈 수 없다고 못 박으면 기꺼이 수긍할 원장이 몇이나 될까?

  물론 그동안 꽤 많은 사립유치원이 정부 지원 덕에 황금알 낳는 거위 노릇을 했고 일부는 급식비 횡령, 교구비 리베이트, 교사 인건비 착취 등의 못된 짓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래서 사립유치원을 대하는 학부모와 일반 국민의 시선이 싸늘할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대중이 응원한다고 해서 명분만 내세우고 윽박지르는 것은 정치면 몰라도 행정이 취할 행동은 아니다(정치라고 해서 썩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사립유치원 행태가 못마땅하더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는 게 맞다. 어떤 것을 인정하고 무엇을 수용할지는 긴 얘기니 생략하자. 다만 관건은 유치원에 포함된 설립자 사유재산의 정당한(!) 몫 인정이라는 것만 남긴다.

  사립유치원 비리가 이슈화된 뒤, 인터넷 댓글에 이런 문제가 유치원뿐이겠냐 어린이집도 조사해라,’ ‘요양시설도 마찬가지다와 같은 글들이 올라왔다. 사실 사립유치원 비리와 유사한 문제는 도처에 만연해 있다. 선진국과 구분되는 한국 행정의 특성은 교육·의료·돌봄 등 많은 공공서비스가 정부 지원으로 민간을 통해 제공된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이 분야에 대한 국가의 능력이 미약했던 탓에 민간이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국가의 능력이 향상된 뒤에도 기존의 민간 통한 제공 방식을 많은 부분 유지했다. ‘사학비리사립유치원 비리보다 익숙한 용어다. 사학비리는 공교육이라는 공공서비스를 이윤추구 동기를 떨쳐내기 힘든 민간을 통해 제공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소설 <도가니>의 보육원이나 수년 전 떠들썩했던 형제복지원의 인권유린도 마찬가지다.

  정부 지원으로 민간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권장할 측면도 많다. 그런데 정부 지원-민간 제공이 잘 작동하려면 민간의 과도한 이윤추구 행위를 제어하면서 성실하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게 하는 기제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공공서비스의 제공은 민간에게 맡기더라도 서비스의 질과 혜택의 포괄성(배제되는 대상자가 없도록 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정부에게 있다. 이렇게 책임지는 정부를 학계에서는 보장국가라고 부른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