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환 고려대 교수·환경생태공학부
권정환 고려대 교수·환경생태공학부

 

  

  바라고 싶은 미래는 아니지만, 현재의 인류문명이 멸망하고, 긴 시간이 지나 새로운 지능을 갖춘 문명이 이 지구에 다시 출현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들이 과거에 번성했던 우리 문명의 존재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아마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지질학적 지식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존재했었음을 자연적으로 만들어지 어려운 특별한 유기중합체(플라스틱)가 확인되는 지층을 발견하는 것을 통해 알게 되지 않을까?

  자연에 존재하지 않았던 플라스틱(‘플라스틱이라는 용어의 기술적 정의는 조금 다르지만, 대중적으로 플라스틱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니 여기서는 그냥 플라스틱이라고 하자.)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이제 겨우 100년이 조금 넘었지만, 플라스틱이 없는 세상은 더 이상 상상하기 어렵다. 가히 플라스틱의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플라스틱은 플라스틱이 대체한 그 어떤 재료보다 값이 싸고, 안정하고, 인체에 거의 무해하며, 원하는 모양으로 쉽게 가공할 수 있고, 원하는 물리적·화학적 특성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등 엄청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장점이 치명적인 환경문제로 돌아온 것은 모순적이다. 안정한 화학물질은 자연에 오래남아 궁극적으로 원치 않는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현대 녹색화학에서는 분해를 위한 설계(design for degradation)를 화학합성에 있어 중요한 하나의 원리로 받아들인다. 플라스틱 제품은 이런 원리를 충실히 따른 제품이라고 볼 수 없다. 플라스틱 제품이 한번 만들어지고, 사용된 제품이 적절하게 수거하여 처리하지 않으면, 결국 환경매체로 배출된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분해되어 5mm 이하의 미세플라스틱으로 쪼개지고, 이렇게 쪼개진 미세플라스틱이 이제는 공기, , 토양 등 모든 자연환경매체에서 발견되는 범지구적인 오염물질이 되었다. 미세플라스틱이 사람이나 생물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의 논란이 있더라도, 자연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인간활동에 의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우려를 자아낼 만한 일이다.

  그렇다면 학계에서도 대중적으로도 우려가 높은 미세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극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최근 미세플라스틱에 관해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거의 모든 연구결과가 향후 자연환경에서 미세플라스틱의 오염수준은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는 불편한 방향을 가리킨다. 미세플라스틱이 사람과 생태계에 미칠 영향에 관해서는 아직 충분한 지식을 가지지 있지 못하지만, 우려 섞인 견해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자연환경에 흩뿌려진 미세플라스틱을 수거하여 공학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은 아직 요원하다.

  문제의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기술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은 과학자, 기술자의 소명이다. 세계 각국의 많은 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연구하고 있지만, 미세플라스틱 문제에 있어서 과학적 이해와 여기에 기반한 기술적 해결책은 현 시점에서는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환경오염 문제는 본질적으로 물질순환의 문제이다. 자연순환과정에서 소화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플라스틱이 생산고 있으며, 이것이 환경에 축적되고 있는 것을 문제의 본질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궁극적인 해결책은 플라스틱 제품이 허용가능한 수준의 물질순환과정에 유입되도록 생산과 소비를 조절하는 것이 된다. 이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과대포장·일회용품 사용 등을 줄이는 것이 조금 불편하지만, 개인 수준에서도 실천이 가능하고, 당장 의미 있는 효과를 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일 것이다. 인류사를 통틀어 삶의 편이를 추구하는 것은 문명 진보의 아주 중요한 동인이었다. 이제 우리는 지구가 그리 넓지도 않고, 인간의 활동을 무한정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우리와 우리의 후손이 살아가야 함을 인식하고 우리 스스로 절제하며 살아가는 것이 새로운 문명 진보의 방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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