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투리는 빼면 안 될까요?” “안 되지. 사투리도 엄연한 조선의 말이고 자산인데” 지난 1월 조선어학회를 배경으로 개봉한 영화 ‘말모이’에서 등장인물들이 사전을 만들기 위해 사투리를 수집하며 나누는 대화다. 우리말 사용을 탄압했던 일제 강점기, 조선어학회에서는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잡지 <한글>의 독자 투고란을 활용해 방언 채집 운동을 벌였다. 시간이 흘러 1999년, 국립국어원에서는 ‘표준국어대사전’에 2만여 개의 방언을 수록해 우리만의 귀중한 언어 자산을 기록하고 있다. 방언의 가치는 무엇이며, 그 보전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방언·사투리·지역어, 어떻게 다를까

  하나의 언어를 구성하는 요소인 방언은 음운, 문법, 어휘 등의 영역에서 독립된 체계를 가지는 언어의 변종으로, 지리적·사회적으로 구획된 특정 집단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흔히 방언과 혼용돼 쓰이는 사투리는 표준어와 대립적으로 쓰이는 용어로, ‘표준어가 아닌 말’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지역어라는 용어도 사용된다. 방언은 언어체계를 기준으로 그 언어가 사용되는 지역사회를 나누는 ‘방언구획’을 통해 구분되지만, 지역어는 언어체계를 기준으로 나뉘지 않은 임의의 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의미한다. 따라서 ‘경주 지역어’, ‘경기 지역어’처럼 지역의 크기에 상관없이 용어가 사용될 수 있다. 현재 지역어는 앞선 두 용어에 비해 비하의 의미가 낮아 자주 쓰이고 있다. 정승철(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오늘날 ‘사투리’ 또는 ‘방언’이란 말이 흔히 비하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며 “이와는 달리 지역어는 비교적 가치중립적 용법으로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언어와 방언을 구분하는 기준은 일반적으로 ‘의사소통의 가능 여부’이다. 영어 화자와 한국어 화자는 별도의 교육이 없는 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만, 서남 방언 화자와 동남 방언 화자는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때때로 이러한 기준으로는 언어와 방언의 구분이 모호한 경우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언어와 방언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언어 외적 요인들이 작용할 수 있어서다. 예를 들면 노르웨이어, 스웨덴어, 덴마크어는 서로 다른 언어이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반대로 중국 내의 서로 다른 방언 화자들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이상규(경북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는 “하나의 언어는 국가를 넘어서기도 하고, 방언 화자들끼리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언어와 방언의 경계에는 국가, 법률, 교육 등의 언어 외적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역별·계층별로 분화되는 방언

  한국어의 방언은 크게 6개의 대방언으로 나뉜다. 경상도에서 쓰이는 동남방언, 전라도의 서남방언, 함경도의 동북방언, 평안도의 서북방언, 충청도·경기도·황해도·강원도에서 사용하는 중부방언, 마지막으로 제주도의 제주방언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대방언은 다시 중방언, 소방언 등의 하위 방언으로 나뉜다. 경북 안동에서는 ‘갑니까’라는 표준어에 대해 ‘가니껴’, 대구에서는 ‘가는교’ 등으로 다른 방언형이 나타나는 것이 그 예다.

  또, 방언은 말소리의 높이에 따라 뜻이 구별되는 성조방언, 음장에 따라 뜻이 구별되는 음장방언으로 나뉘며 일부 북부지방과 제주도에서는 음장과 높이에 따라 뜻이 구별되지 않는 비음장·비성조방언을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남 방언의 경우 ‘말이 많다’는 문장에서 ‘馬’의 ‘말이’는 HL(고조-저조)로 나타나고, ‘語’의 ‘말이’는 LH(저조-고조)로 나타나지만 서남 방언은 ‘馬’을 [말]로, ‘語’은 [말ː]로 나타나는 방식이다.

  방언의 분화는 화자들의 교류 가능 여부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진다. 서로 교류가 일어나면 말이 가까워져 같은 방언을 사용하고, 교류가 이뤄지지 않으면 말이 멀어져 다른 방언을 사용한다. 교류를 가로막는 데는 강이나 산과 같은 지리적 요인도 존재하지만, 인종적, 사회적 요인도 존재한다. 이상규 명예교수는 “현재 흑인 영어 화자 사이에서 ‘be 동사’가 사라지는 현상, 조선시대 노비와 양반들이 사용하던 말이 달랐던 것 등이 인종적·사회적 방언 분화의 예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행정적 경계도 방언의 분화 요인이 될 수 있다. 언어의 경계에 국경이 영향을 미치듯이, 도의 경계도 방언의 분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표준어에 밀려나는 방언, 그 가치는

  이처럼 교류 여부에 따라 나뉘던 방언의 분화는 교통과 이동통신의 발달 등 사람들 사이에 소통을 원활하게 해 주는 수단들이 늘어나고 있어 희미해지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산업화 시대 강력한 표준어 정책으로 인해 과거부터 사용되던 지역의 방언들이 밀려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2010년에는 유네스코에서 제주 방언을 ‘사라지는 언어’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분류한 것이 대표적 예다. 정승철 교수는 “70~80년대 정부는 ‘바른말 고운말 쓰기 운동’ 등과 같은 표준어 사용 정책을 폈다”며 “방송, 학교 교육 등에서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는 밀려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단법인 제주어연구소 강영봉 이사장도 제주 방언의 위기 원인에 대해 “학교 교육에서 표준어만 쓰도록 하고 있는 데서 오는 결과”라며 “‘교양 있는 사람들의 쓰는’이라는 표준어의 제약이 결과적으로는 표준어는 교양 있는 언어이고 방언은 교양이 없는 언어로 인식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방언은 과거 국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데서 가치를 지닌다. 가령 아래 아(ᄋᆞ) 모음은 내륙에서 18세기 이후 사라졌지만, 제주 방언에서는 현재까지도 발견된다. 또 바닥에 구멍이 뚫린 체를 의미하는 단어 ‘어레미’는 경상도에서 ‘얼개미’라는 방언형을 가진다. 이는 중세 이전 ‘얽다’에서 ㄱ이 탈락한 결과로, 경상도에서는 중세 국어 이전의 형태가 남아 있는 것이다. 이상규 명예교수는 “언어의 유물인 방언은 국어 역사를 설명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며 “방언은 지식의 보고”라고 설명했다.

  실용적 측면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과메기’는 동남 방언으로, 이에 대응하는 표준어는 찾기 힘들다. 표준어로는 우리말의 모든 표현을 해낼 수 없기에, 방언을 통해 어휘적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것이다.

  방언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들의 존재를 입증하기도 한다. 방언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 사용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한성우(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는 방언은 그 말을 쓰는 사람의 존재 자체”라며 “특정 지역, 특정 계층의 방언이 남아 있다는 것은 결국 그것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라며 방언의 가치를 설명했다.

 

  방언 보전을 위한 노력들

  현재 국립국어원에서는 방언의 보전, 연구를 위한 지역어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지역어 사용 의식 및 환경 실태 조사 △소멸 위기 지역어 조사, 채록 △지역 사회의 언어사용 관측 조사 △통일 대비 북한 지역어 조사 기반 구축을 목적으로 총 71지점의 시·군 단위 지역어 조사가 이뤄졌으며, 2015년부터 현재까지는 55개 지점의 지역어 조사가 추가로 진행지고 있다. 또한 2019년 하반기 개통을 목표로 지금까지 조사·축적된 지역어 자료를 통합, 관리하고 지역어 정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적으로 방언이 표준어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이 없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말은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승철 교수는 “전통적 방언이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면서도 “표준어만이 가치 있다는 인식을 버리고, 사라지는 방언을 조사해서 남겨놓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방언의 지속적인 보존을 위한 기관 설립과 교육적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이상규 명예교수는 “국립국어원과 대등한 위상을 가지는 국립방언연구원을 만들어 방언을 수집·조사해야 한다”며 “방언의 조사와 더불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향토사랑 교재를 만들어 보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말에는 위계가 없다. 서울말로는 제주도 사람들의 토착적 정서를, 전라도 사람들의 지역 문화를 표현하기 힘들다. 방언에는 그 지역민들의 전통, 역사성이 담겨있으므로, 전통적 방언을 보전하면서 표준어와 방언이 공존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글 | 전남혁 기자 mike@

일러스트 | 장정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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