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들른 작은 서점에서 파격적인 제목과 자유분방한 디자인을 겸비한 책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책은 독립출판물일 가능성이 높다. ‘독립출판’이란 작가 개인이 원고 집필과 교정, 편집 디자인, 인쇄까지 손수 담당하는 출판 방식이다. 정식 작가나 출판사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책을 출판할 수 있다. 몇몇 독립출판물은 일반출판물로 다시 정식 출판되기도 하면서 독립출판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자유로운 주제와 형식으로 꾸민 독립출판물

  독립출판은 말 그대로 정해진 형식 없이 ‘내 마음대로 책 내기’다. 독립출판물은 기성 출판물에서 다루지 않을 법한 소재를 자유롭게 다뤄 입소문을 타게 된 경우가 많다. 책방 포털 서비스 ‘책방라이브’가 독립서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작년에 주목받은 독립출판물의 주요 키워드로는 ‘우울’이 33%로 1위에 올랐으며, ‘페미니즘’이 14%로 뒤를 이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일간 이슬아 수필집> 등의 독립출판물은 작가의 우울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일상적인 위로와 심리적 위안을 줘 인기를 끌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2018 올해의 독립출판’ 1위로 뽑히기도 했다. 2위를 차지한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의 작가 김나연 씨는 “책에 실린 글은 보통 우울한 날 쓴 글”이라며 “나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필요한 위로가 무엇일까 생각하며 책을 썼다”고 말했다. 또 “스스로 생각한 대로 글을 쓰고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다는 게 독립출판의 매력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페미니즘이 독립출판계에 스며들기도 했다. 독립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출간된 <우리에겐 입이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입트페)>은 여성혐오적인 말들로 고통 받는 여성들을 위한 대화 매뉴얼을 담아냈다. <입트페>를 출간한 이민경 작가는 이후 ‘봄알람’이라는 1인 출판사를 열어 페미니즘 관련 서적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와 <메갈리아의 반란>을 출간하기도 했다.

  독립출판물은 그 장르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시집, 사진집, 그림책 등 종류는 다양하다. 라유 작가의 독립출판물 <18살에게 듣는 인생 조언>의 경우 페이지마다 짤막한 문장과 직접 그린 그림이 전부다. 정유미 작가의 독립출판물 <안녕, 월경컵>은 작가의 2년 간의 월경컵 사용기를 안내문 형식으로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담아냈다. 하나같이 초점이 나간 사진들을 담은 <망친 사진집>, 책 표지를 벗기면 안에서 계속해서 옷 그림이 나오는 <가을 옷장> 또한 각각의 개성을 보여준다.

  독립출판물이 정식 출판되며 대형 서점에서 인기를 얻은 경우도 있다.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경우 기분부전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냈으며, 일반출판물로 재출간돼 대형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도서출판 ‘은행나무’ 관계자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경우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을 만한 이야기”라며 “독립출판물로서 대중적·상업적 성과를 충분히 입증해 일반출판물로의 발행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스스로, 하지만 도움도 필요해

  독립출판의 과정은 크게 제작, 재원 마련, 홍보로 나뉜다. 제작 과정에서 이뤄지는 원고 작성과 책 디자인은 대부분 작가 스스로 진행한다. 인디자인(InDesign) 등의 프로그램을 활용해 책 표지를 디자인하며, 자체적으로 교정, 교열을 거쳐 최종적으로 책을 인쇄한다. 이 과정에서 매뉴얼을 제공해 독립출판을 도와주는 플랫폼도 이용한다. 자가출판플랫폼 ‘부크크’는 제시된 책 만들기 프로그램을 통해 원고를 입력할 경우 ISBN 승인을 거쳐 책으로 출판해준다. 부크크를 이용해 독립출판물 <B Side Story>를 제작한 이명호(문과대 국문13)씨와 박진범(문과대 국문13) 씨는 “독립출판 매뉴얼을 이용해 퀄리티 높은 책 제작과 디자인이 가능했다”며 “출판인증을 받은 후에는 온라인 납품 대행 서비스도 제공받아 출판물을 유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독립출판을 위한 재원 또한 작가가 스스로 마련하지만 크라우드 펀딩을 받아 진행되는 경우도 다수다. ‘텀블벅’ 등의 플랫폼에 자신이 기획하고자 하는 책의 대략적인 내용을 올리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일정 금액을 후원하는 방식이다.

  대형서점 출고, 온라인서점 광고 등 다양한 형태로 홍보를 진행할 수 있는 일반출판물과는 달리 독립출판물은 별다른 홍보 창구가 없다. 독립출판을 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직접 독립서점에 입고 요청을 하거나 개인 SNS로 홍보를 진행한다. 김나연 작가는“독립출판물은 따로 홍보나 광고를 해주는 곳이 없어 SNS가 유일한 온라인 홍보 창구”라며 “독립서점에 입고한 경우 해당 서점에서 홍보를 맡아준다”고 말했다. 독립서점 앱 운영업체인 ‘퍼니플랜’이 작년에 실시한 <독립서점 현황조사>에 의하면 독립출판물들은 전국에서 운영 중인 357개의 독립서점을 중심으로 유통되고 있다. 망원동의 독립서점 ‘백년서점’ 대표 장인혁(남·32) 씨는 “각 독립서점마다 주인들의 취향에 따라 입고하는 독립서적도 다르다”며 “SNS를 통해 다양한 독립출판물에 대한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립출판 입문자들을 위한 프로그램

  독립출판물이 주목받으면서 독립출판을 시도하는 움직임도 많아지고 있다. 독립출판 ‘입문자’를 위해 곳곳에서 독립출판을 돕는 워크숍이 열리고 있다.

  본교 파이빌에서도 독립출판을 돕는 프로그램을 주최했다. 작년 5월에는 독립출판 경험이 있는 사람과 독립출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만나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인 ‘파이빌 독립출판 네트워크’ 행사가 열렸다. 이어 작년 여름 동안에는 직접 독립출판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인 ‘파이빌 출판소(파출소)’를 진행했다. 파출소는 스스로 책 구상, 디자인, 편집, 원고 작성까지 독립출판 과정 전반에 대한 교육을 제공했다. 파출소 프로그램을 통해 책 <어림>을 독립출판한 우범하(문과대 불문18) 씨는 “독립출판 과정에서 전문적으로 편집, 인쇄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 파이빌 출판소의 도움을 받아 기술적인 부분을 보완하고자 했다”며 “책 디자인을 할 때 표지의 크기, 색감, 재질 등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받아 커스터마이징된 나만의 책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일부 독립서점도 독립출판을 준비하는 이들을 돕기 위한 다양한 워크숍을 열고 있다. <독립서점 현황조사>에 따르면 독립서점 108곳이 출판 워크숍을 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독립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는 현재 글쓰기, 그림, 사진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스토리지북앤필름’ 스태프 테제(가명,남·30) 씨는 “원고로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활용되는 글, 그림,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며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들이 참여해 독립출판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기획, 원고작성, 제책, 유통, 홍보까지 출판의 전 과정이 독립출판에 결합되면서, 출판물의 새로운 트렌드로 정착하고 있다.

 

글 | 이다솜 기자 romeo@

사진 | 조은비 기자 juli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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