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을 지나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민감하면서도 향후 일상생활 자체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변화 중의 하나는 아마도 디지털 사진의 보편화일 것이다. 기존의 필름카메라에 비해 적은 부피와 무게, 저렴한 가격, 신속함, 간편함, 이미 일상화되어진 인터넷 매체와의 용이한 호환성, 보존과 편집의 용이함, 필름카메라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사진의 질적 수준 등으로 인하여 디지털 사진기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급증했으며, 이로 인한 일상의 변화속도 또한 빨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포트렌드 리서치 그룹(Info Trends Research Group)에 따르면 전세계 디지털카메라 판매량이 2004년에는 5천3백만대에 도달하고 이후 4년간 매년 15%의 연평균성장률을 유지해 2008년에 이르면 8천2백만대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으며, 스트레티지 애널리틱스(SA)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핸드폰카메라(카메라폰)가 한국과 일본의 수요 급증에 따라 2003년도 상반기에 이미 전 세계 판매량이 2천5백만대로 2002년도 동기 대비 5배 이상 급증했으며, 2천만대 가량 판매된 디지털카메라보다도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성은 인터넷을 통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디지털 사진을 전문적으로 게재하고 있는 국내의 한 유명 사이트는 무려 81개 종류의 다양한 디지털 사진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서는 매일 무수히 많은 사진들이 그에 대한 리플과 더불어 각 주제별로 실리고 있다. 자연, 길거리, 자신, 가족, 친구, 동물, 엽기 등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모든 오브제를 이 사이트를 통해 친구, 가족뿐만 아니라 익명의 타인에게 보여주고 공유한다. 그리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면서 디지털 사진과 가상공간이 결합해 21세기적 새로운 일상의 모습과 관계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특히 2∼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강하게 증가하고 있는 오늘날의 새로운 사회적 경향성인 ‘디지털 시뮬라시옹(J.Baudrillard의 시뮬라시옹 개념과 디지털 개념의 합성어)’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으로서, 즉 이제는 디지털로 이루어진 시뮬라시옹의 세계가 일상의 출발점이 되는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시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카메라, 핸드폰카메라 등 신 과학기술이 응용된 도구적 기기들이 보편화와 일상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일반 매체로서 필수 생활용품으로 자리 메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언젠가 21세기적 특수성의 시발점으로도 분석될 수 있는 이들 경향성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들 경향성의 역사적 출현 과정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그 원인에 대해 변화의 기반을 제공한 측면(공급)과 그것을 희망한 측면(수요)의 두 가지 차원에서 다음과 같이 간략히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공급의 측면에서는 과학을 이용한 자본주의의 극대화를 말할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꾸준히 증가되어 온 자본주의의 힘은 1990년대 초반 동서이데올로기 갈등의 종식과 더불어 세계화 경향의 흐름을 타고 극대화되면서 ‘더욱 신속히, 더욱 많이, 더욱 편리하게’ 라는 과학의 ‘속물적 이념(H.Arendt)’ 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무한경쟁의 차원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 결과 컴퓨터의 발달과 이로 인한 인터넷의 상용화가 가능하게 되고 이어 디지털 개념을 바탕으로 한 주변 도구들이 개발되어 일상적 영역으로 위치 지워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사진의 특성이 과학의 특성과 맥락을 이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두번째는 수요의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원인으로 인간이 지니는 고유의 욕망인 ‘신체의 확장(M.Merleau-Ponty의 개념을 빌리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의 지각능력을 중심으로 자신의 공간(신체)과 시간(삶)을 확장시켜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세계를 보다 신속히 얻고자 하는 고유의 욕망구조를 지니고 있고, 이러한 억누를 수 없는 본연의 욕망이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과학의 ‘속물적 발달’을 강하게 유도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이와 같은 두 가지의 원인론을 종합해보면 디지털 사진의 유행은 인간의 고유 욕망과 자본의 욕망이 과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극대화되면서 나타나게 된 일련의 과정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마치 자동차가 유행하고 텔레비젼이 유행하게 된 것과 같이 더욱 빨리, 더욱 많이, 더욱 편리한 방법으로 세상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인간 사회의 끝없는 지향성에 기인한 또 다른 단편적 결과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빨리 가는 것이 빨리 가는 것이 아니며, 많이 가지는 것이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고, 편리한 것이 진정 편리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하는 전통적 화두를 떠올리게 하는 시대에 서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최원기 한국청소년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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