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셀러를 흔히 한 시대의 거울이라고 한다. 한 시대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는 물론, 전체적인 사회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과 시대, 책과 사회의 관계에서 책은 늘 일종의 종속변수이기만 할까?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프린스턴대)은 <책과 혁명>(길)에서 아니라고 답한다. ‘책은 역사를 기록할 뿐 아니라 만들기도 한다.’

그는 스위스 뇌샤텔 출판사 문서보관소에서 잠자고 있던 편지 5만 통과 장부책을 25년에 걸쳐 연구했다. 18세기 프랑스 전체 도서 거래량을 재구성해내기 충분한 그 자료는 ‘불법 서적’의 주문과 판매량이 기록돼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단턴은 금압의 대상이 되는 책이지만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읽힌 책, 요컨대 ‘금서 베스트 셀러와 프랑스 혁명’의 관계에 주목한다.

프랑스 혁명 직전 가장 잘 팔리던 베스트 셀러 <뒤바리 백작 부인에 관한 일화>는 루이 15세의 연인 뒤바리 부인의 일대기 형식이지만, 중상비방문이자 파렴치한 추문이기도 하다. 뒤바리는 기성 정치체제의 본질을 보여주기 위한 거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금서 가운데 상당수는 기성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실상의 정치적 주장을 담고 있다. 1770년대 루이 15세 치세 말부터 쏟아져 나온 정치적 중상비방문, 즉 ‘거물급으로 불리는 공인들의 명예를 공격하는 욕설’을 예로 들 수 있다. 중상비방문은 ‘현실 그 자체를 빚어내고 사건의 진행과정을 결정하는 데 이바지’했다.

한편 ‘책의 내용을 대상으로 한 역사 읽기가 아니라 책과 관련한 주변의 제반 사실, 즉 책의 탄생, 전파, 독서, 소멸 과정 등을 통해 당대의 역사를 해석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책으로, 이중연의 <책의 운명>(혜안)이 있다. 예컨대 저자는 사림의 영수 조광조가 희생된 기묘사화 이후 <소학>이 사회적인 금서가 됐고, 연산군, 명종 대에 소설이 성행하고 불교 서적이 금기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조선 중기의 사림과 훈구의 사상적 대립을 <소학>으로 대표되는 성리학 서적과 소설로 대표되는 반(反)경서 서적의 대립으로 읽어내고자 한다.
그밖에 대한제국 시대과 일제 강점기의 신문, 잡지, 총독부 간행자료 등을 섭렵한 저자는, 각 시기의 중점적인 금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구국계몽운동 관련 출판물(1910년대), 민족운동 관련 출판물(20년대), 사회주의 관련 출판물(20년대 후반∼30년대), 총독부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모든 출판물(30년대 후반 이후). 1925년에는 일본 산세이도에서 발간한 소학교 참고서에 ‘조선 민족을 모욕하는’ 내용이 있어, 함평소년단과 김천소년회 등이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전국적인 여론 환기를 결의한 일이 있다는 것도 특기할 만 하다.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일제 출판물에 대한 사회적 불매운동이었던 것이다.

위의 두 책에서 볼 수 있듯이 금서는 한 시대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첨예한 척도다. 주류 질서 혹은 지배 세력이 제작, 배포, 소지, 독서를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한 사회가 당연시하는 질서, 지식, 가치 등에 의문을 표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그 사회 기득권자들에게는 중대한 위협이다. 그래서 금서의 성격은 각 시대 주류 질서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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