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국내 PC방 인기 게임 순위에서 굳건하게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모르는 대학생도 드물 것이다. 플레이 여부를 떠나 이 게임의 코드들은 이제 보편적 문화 코드의 영역에 들어갔대도 틀린 말이 아닌 수준에 이르렀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캐릭터는 챔피언이라고 불린다. 게임 속 세계관에서 각 국가는 직접 피 흘리는 전쟁 대신 소환사의 협곡이라는 가상의 전장 안에서 전투를 벌이고, 그 승패를 가지고 국가 간 갈등을 해결한다. 이때 해당 캐릭터를 조종하는 플레이어는 소환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그래서 일종의 대리전 양상을 띤다. 실제로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로부터 벗어난 이 대리전은 상당히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협곡 안에 소환된 챔피언은 게임 안에서 죽더라도 몇 초의 대기시간 후 부활할 수 있는데, 이는 전장 자체가 가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피 흘리는 일이 없는 이 방식은 꽤나 매력적인 컨셉으로 보인다.

  전쟁, 싸움이라는 피 튀기는 갈등의 예상피해를 뒤로하고 그 결과만을 받아낼 수 있는 대리전의 양상은 비단 리그 오브 레전드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꽤 많은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실제로 이 대리전의 방식을 차용한다. 특히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보여주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유아공용 콘텐츠들에서 이런 방식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것이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수많은 적들과 결투를 벌이지만, 주인공은 어지간해서는 전투로 인해 부상을 입는 일이 없다. 포켓몬이라는 대리주체들 사이에서만 전투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격투의 박진감을 유지하면서도 주인공이 다치지 않는 방식인 대리전 양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애니메이션이다.

  비단 포켓몬스터뿐일까. 국산 프랜차이즈인 터닝메카드도 변신 자동차라는 대리주체들이 싸우는 내용이고, 어린이용 특촬물 레전드히어로 삼국전도 히어로로 변신해서 싸우지만 패배하더라도 죽는 주체는 변신했을 때의 대리 캐릭터다.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 높은 팽이 배틀인 베이블레이드또한 지더라도 팽이가 쪼개질 뿐, 팽이 플레이어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는다.

  대리전의 방식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무언가가 된 배경에는 아무래도 디지털 게임이라는 매체의 존재감이 적지 않다. 실제 총 맞을 위험을 제거하고 총싸움의 쾌감만을 전달하기 시작한 매체가 디지털 게임이기 때문이다. 물론 디지털의 출현 이전부터 카드게임, 보드게임과 같은 놀이 양식부터 위험을 줄인 대체현실이라는 점이 존재했지만, 이를 좀 더 실재감 있게 만들려는 시도는 디지털 게임 시대에 이르러서야 구체화 되었다.

  위험을 덜어내고 재미만 남기는 대리전의 방식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이 논지에서 자칫 놓치면 위험한 사실 중 하나는 그 실재하는 위험이 어디로 가느냐는 문제다. 디지털 게임에서 위험은 가상으로 넘어간다. ‘배틀그라운드의 대리전이 안전하면서도 문제없는 이유는 총 맞을 위험이 가상공간 안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의 배틀그라운드가 가상 캐릭터가 아닌, 실제 전장에 놓인 누군가에게 사격과 엄폐를 지시하는 일이었다면 이건 위험을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타인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일이 되고 만다.

  그렇기에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 무언가를 남에게 대리시킨다는 것은 위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나의 위험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결과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위험 가득한 산업 현장을 해당 산업의 정규직이 아니라 파견근로 형태의 외주하청으로 채우는 대리업무의 행태를 리스크 감소라고 포장하는 전략기획서는 게임을 만드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위험의 전가를 두고 하는 거짓말이다.

 

이경혁 게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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