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5 13:14 (화)
[탁류세평] 무병신음(無病呻吟)이라는 병
[탁류세평] 무병신음(無病呻吟)이라는 병
  • 고대신문
  • 승인 2019.03.2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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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문화스포츠대교수 미디어문예창작과
이영광
문화스포츠대교수·미디어문예창작과

  병문안 다녀온 오후에 교정을 거닌다. 봄이 성큼 다가와 있다. 무거운 마음을 봄볕에 쬐고 있자니 이 생각 저 생각이 꼬리를 문다. 큰 병은 물론 큰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 다치거나 병이 든다. 그럴 땐 약국을 찾거나 병원엘 가야 한다. 이 병을 그냥, 병(A)이라 불러볼까. 그런데 세상에는 무병(無病)이라는 병이 또 있지. 게다가 무병은 종류도 여럿이라지 않나. 우리는 병에도 걸리고 무병에도 걸린다.

  첫 번째 무병은 꾀병(B)이다. 말 그대로 병이 없는데 아픈 체하는 엄살 병이다. 모두들 이 병에 걸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수업받기 싫거나 학교 가고 싶지 않을 때 찾아오던 병이니까. 양호실에도 더러 가 눕고 조퇴도 좀 해야 학교생활이 견딜 만해지던 걸 떠올려보면, 꾀병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힘들 땐 쉬고 답답한 숨통은 틔우고 사는 것이, 학교를 아예 그만두는 것보다는 더 나을 테니까.

  둘째는, 병에 걸렸는데도 아플 줄 모르는 병(C)이다. 안 아프니까 무병이다. 시인 이성복은 이 병에 걸린 상태를,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그날>)는 말로 요약한 바 있다. 이 역설적인 문장은 우리를 얼마간 불편하게도 하지만 새겨보면 수긍이 가는 진실이 깊은 곳에 스며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사개가 어긋나 있는 혼란 속에 우리가 살고 있어서이다.

  구속수감 중이던 전직 대통령이 보석 허가를 받아 풀려났다. 신청 사유는, 아프다는 것이었다. 아프니까 조퇴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은 여러 번 출두 명령을 거부하다가 얼마 전 법정에 나갔다. 거부 이유 역시, 아프다는 것이었다. 아프니까 결석하겠다는 것이었다. 고령에 질환이 있으면 실제로 여기저기가 아플 것이다. 그런데 왜 별로 아파 보이지 않을까. 몸이 아니라 딴 곳이 안 아파 보인다. 자신들의 행위가 다른 이들에게 주었을 고통에 대해선 일언반구가 없는 것이다. 이 ‘건강한 환자’들에게는 어쩐지 본인의 아픈 몸이 세상 고통의 전부이고 누군가의 고통을 아파하는 마음, 아픈 마음은 희미해 보인다.

  이것은 희귀병이 아니다. 이 증상은 우리 사회 기저에 깊은 뿌리를 두고 무시로 발병해 온 고질이다. 가까이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겨냥한 무차별적 이차 가해들, ‘오월 광주’의 희생자이자 유공자인 분들을 향한 폭언 공세가 있다. 조금 더 기억을 더듬어보면, ‘용산 참사’의 유가족들을 ‘돈벌레’로 몰던 무정한 막말들이 있었고, 단식하는 ‘세월호’ 유족들 곁에서 피자 파티를 벌이던 광란이 있었다. 제 언행이 남에게 고통을 준다는 걸 모르니 아프지 않고, 아프지 않으니 병든 줄 모른다. 무병은 이렇게 중병이기도 하다.

  셋째는, 병이 없는데도 아픈 어떤 증세(D)다. 인문학, 그중에서도 문학은 이 아리송한 증상에서 출발할 때가 많다. 아픈데 대체 왜 아픈지 알 수가 없는 상태. 하지만 아픔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데 이 병의 진짜 아픔이 있다. 시인 이상은 <지비(紙碑)>에서 “무사한세상이병원이고치료를기다리는무병이끝끝내있소”라고 신음하듯 말했다. 이것은 세상 비참에 접하면 심장에서 피가 나는 마음의 상태를 적은 것이다. 윤동주가 <병원>에서 보여준 “병이 없다”는 그 병의 이름 또한 무병이었다. 이들은 까닭 없이 앓았고 그 통증으로 평생 시를 썼다.

  우리는 A~C의 병들에 다 걸릴 수 있다. 아파서 병원에 갈 수도 있고, 안 아픈데 결근할 수도 있고, 심장이 없는 사람처럼 세상 고통에 눈 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 D에도 걸릴 수 있다. D는 A~C 모두를 아파하는 병이고, 아프고 싶어 하는 병이다. 남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나의 아픔이 남의 아픔으로 변하기도 한다는 데 혼돈의 한 자락이 걷히는 삶의 신비가 있다. 그때, 앓고 있는 그는 나이다. 무병신음은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표지 같기도 하다.

  나는 이 세상에 온 지 오십 년이 넘었지만, 아직 아프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친구는 지병을 이겨내고 다시 아픈 펜을 들 것이다. 삼월의 교정엔 봄기운이 물씬하다. 대학은 아프지 않은가. 봄기운 속 어딘가에서 자꾸 무병신음들이 들려오는 듯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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