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빌딩과 뻥뻥 뚫린 도로로 가득 찬 도시에서 느낀 피로감인지는 몰라도, 허름하지만 고즈넉한 것들에 대해 낭만을 품게 된다. 건물들 구석진 곳과 골목 틈새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를 찾고, 때로는 낡고 쇠락해 보이는 장소도 유심히 들여다본다.

  해방촌에 자리 잡은 카페 오랑오랑도 그런 곳이다. 405번 버스를 타고 보성여중고 앞 정거장에서 내려 내리막길을 헤매다 언뜻 스산한 분위기의 신흥시장에 다다른다. 시장 안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게들 사이 오랑오랑은 작은 문패 하나를 들고 손님을 맞이한다.

  방문객의 시선을 끄는 오랑우탄 네온사인을 뒤로 한 채 계단을 올라오면 투박하고 단순한 공간이 나타난다. 흰 타일과 벽돌이 다닥다닥 모인 무채색의 시멘트벽과, 오랜 세월이 묻어난 것처럼 보이는 목재 테이블은 오히려 이 공간에 깔끔하고 아늑한 느낌을 만든다. 경사가 가파른 해방촌 지형을 닮은 듯 아찔한 3층 계단에 올라서면 새로운 세상이 기다린다. 오래된 주택들과 사이사이로 걸쳐진 전신줄, 그와 겹쳐 나타나는 N서울타워가 자아내는 풍경은, 카페에서 직접 끓인 연유 라떼에 캐러멜 설탕을 뿌린 아이슬란드와 함께 할 때 잊지 못할 경험이 된다.

  ‘오랑은 말레이어로 사람들이란 뜻이다. 좋은 커피와 분위기 있는 공간과 함께, 오랑오랑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다. 2016년부터 친구와 함께 오랑오랑을 손수 꾸린 안성현(·34) 씨는 오랑을 매장을 찾아주는 고객과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이라고 말한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방문하고, 입지가 좋지 않아도 매장에 일부러 찾아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래서 결국 우리의 일도 이름답게 오랑오랑(사람들)이지요.”

  해질 무렵, ‘오랑이 하나둘씩 카페에 모여든다. 전구의 불빛은 은은함을 더하고, 사람들은 오랑오랑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안 씨는 자신의 생각이 오랑오랑의 생각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존재만으로도 은은히 밝혀지는, 흔들리지 않는 카페를 조심스레 소망한다. “헤르만 헤세가 소설에서 그린 싯다르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린 조르바처럼, 삶에 있어 스스로에게 중심을 두는 개인들이 모여 만드는 공간으로 남고 싶습니다.”

  골목 사이 숨겨져 있는 보물 같은 가게. 오랑오랑을 따스한 봄 햇살을 느끼며 일상의 추억을 만들고 갈 수 있는 공간으로 추천한다.

 

이정환 기자 ec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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