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한 달이 지나고 이제 4월이다. T.S. 엘리엇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황폐한 상황을 그렸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다. “죽은땅 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심정이 과연 어떤 것일까? 전쟁으로 황폐해진 현재에 대한 절망일까, 아니면 봄을 맞아 새로운 생명을 싹틔우려는 희망일까?

  어쩌면 절망과 희망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항상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고 희망이 좌절될 경우 더 큰 절망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절망과 희망이 더욱 선명하게 대비되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불렀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4월은 어떤가. 대학가의 4월은 활기에 넘치는 가운데 나름의 부담을 안고 있다. 완연 한 봄기운 속에 젊음의 열기가 출구를 찾아 헤매지만, 중간고사의 부담을 무시할 수 없는 것 이다. 가끔은 시험을 포기하고 마음껏 뛰노는 자유로운 영혼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어찌하리오. 100세 시대에 남은 70~80년 삶을 위해 오늘을 투자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외면할 수 없으니...

  그래서 젊음은 항상 갈등과 번민과 선택의 고민 속에 방황 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 고려대 학교의 4월은 특별하다. 여러분은 본관 옆에 있는 4·18기념비를 방문해 본 적 있는가? 거기 조지훈 선생이 쓴 자그마한 비문을 읽어 본 적 있는가? 우리 고려대학교가 세상에 자랑할 것이 무척 많지만, 4·19혁명에 앞장섰다는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앞줄에 놓아야 할 것이다. 모두가 4·19를 이야기하는데 우리만 4·18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여러분은 고려대학교의 정신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고려대학교의 가장 큰 강점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자유, 정의, 진리라는 교훈 혹은 1905년 교육구국을 위해 민족의 힘으로 설립되었다는 역사,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성과... 모두가 중요하다. 그러나 고대와 오랜 세월 같이한 선배일수록 고대의 기본정신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로움이라 여긴다. 이를 100년 넘게 지키면서 발전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고대가 사람이 좋은 학교이고 이를 바탕으로 계속 좋은 사람들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26년 전 내가 고대에 입학할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했지만, 그 시설이나 여건이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불만은 학생들 사이에 적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도 기억나는 것은 당시 교수님들이 이전에 비해 훨씬 나아진 환경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점이다. 고대의 간판이었던 법대가 독립된 건물 하나 없이 본관 건물의 2층과 3, 심지어 요즘 학생들이 그 존재 자체도 잘 알지 못할 4층 구석 다락방에서도 강의를 진행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는가?

  좋은 사람이 좋은 환경을 만들고 시설을 개선하는 것이지 좋은 환경이나 시설이 좋은 사람을 키워내는 것은 아니다. 오직 좋은 사람만이 좋은 사람을 키워 낼 수 있다. 고대의 성장과정이 이를 무엇보다 잘 보여준다.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단지 능력이 있는 사람, 재주가 있는 사람, 성실하고 선량한 사람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옳은지를 제대로 분별하고, 불의에 대항하여 자신을 던져 싸울 줄 알며, 그 싸움에 이길 수 있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데 소홀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우리가 말하는 좋은 사람이다.

  고대 선배들이 이런 의미에서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은 4·18을 통해서도 확인되었고, 그 전통 은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나도 대학 초년생 시절 선배들에게 받은 것이 참 많았다. 나중에 선배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어떻게 갚아야 할지를 묻자, 선배들은 자신도 선배들에게 받은 것을 후배들에게 베푸는 것이라며 자기에게 갚을 생각 말고 후배들에게 베풀라고 했다. 그때 나는 이것이 고대구나! 라고 느꼈다.

  여러분도 유사한 경험이 있는가? 만일 예전 같지 않다면 여러분이 그 전통을 복원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고대가 4·18에 앞장섰던, 불의에 항거하여 승리할 수 있었던 고대의 강점이 가장 잘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여러분과 하나 되고 함께 발전하는 그런 영광스러운 4월이 여러분 앞에 시작되고 있다.

 

차진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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