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늘에는 미세먼지가 가득하다. 경제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취업도 계속 어렵다고 한다. 정부도 제대로 일을 못한다고 한다. 이런 말들을 듣다 보면 모든 것이 어려운 시대에 제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화가 난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든다. 우리가 표출하는 분노는 과연 올바를까.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엉뚱하게 화를 내고 있지는 않을까.

  경험 하나가 있다. 해마다 최저임금 협상 전후로 많은 언론을 통해 관련 이슈가 다뤄진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피해를 보는 여러 사례 중 대표적으로 꼽힌 곳이 편의점이었다. 편의점 특성상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야만 하는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수익을 내기 힘들어진다는 내용이 쏟아졌다. 국가 경제의 위기가 도래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편의점 점주들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찾아갔다. 목이 좋은 곳에 들어가기 위해 업체들끼리 경쟁하느라 임대료를 올리며 계약, 재계약을 하는데 그 피해는 점주들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한밤중에 오는 손님이 1명도 없는 곳도 24시간 개점상태를 유지하느라 들어가는 손해도 있었다. 미성년자가 나이를 속여 담배를 샀는데 그 피해를 점주들만 감당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하소연도 들었다. 당시 관련 내용이 여러 곳에서 보도됐지만, 일회성에 그쳤고 최저임금으로 편의점이 어렵다는 보도만 이어졌다.

  어느 날, 데스크에서 편의점업계 임원들을 대상으로 최저임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기사로 올리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기사로 정리해 올렸지만 정작 올라간 기사는 내가 취재한 내용과 전혀 달랐다. 가상의 편의점 점주들이 등장해 최저임금 때문에 힘들다고 아우성쳤다. 데스크는 내게 기자는 소설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 기사는 내 이름으로 포털에 올라가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부끄러웠다. 얼마 뒤 어느 대기업 임원이 함께한 술자리에서 이미 김영란법은 죽은 법이 됐다, 앞으로도 서로 여러모로 잘 부탁한다 등의 발언들이 오가는 것까지 목격한 후 그 매체에서 기자로 일하는 것을 그만뒀다.

  불편과 부당함에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고 분노하는 것은 그 대상이 대통령이든 대기업이든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의도가 섞인 허구의, 과장된 정보에 휩쓸려 분노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특정 정보나 보도를 그대로 믿기보다 해당 이슈에 대해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였나. 누가 그랬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정보를 들어도 급하게 분노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알아보자. 나중에 아님 말고할 것이 아니다. 내가 분노했을 때 그 분노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차분히 살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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