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적인 느낌의 일본풍 외관과 간판. 홍대 앞과 종로 번화가에 즐비한 와쇼쿠(和食) 전문점들은 젊은 층 사이에서는 이름난 ‘핫 플레이스’다. ‘와쇼쿠’란 흔히 우리가 ‘일식’이라 부르는 모든 일본요리를 통칭하는 일본식 표현이다. 와쇼쿠는 어떻게 젊은이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게 됐을까. 그리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몰이 중인 와쇼쿠의 사례가 정체된 ‘한식 세계화’에도 시사점을 주지 않을까.

 

  대세로 떠오른 와쇼쿠

  ‘와쇼쿠(和食)’는 넓은 의미로 ‘일본의 식재료 생산·가공·조리 및 식사와 관련된 기술·지식·관습과 전통을 모두 포함한 사회적실제’를 일컫는 일본어 표현이다. 좁은 의미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일식(日食)’이라부르는 일본식의 식사 전반을 지칭한다. 와쇼쿠는 2013년 음식문화로는 세계 4번째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며 국제적으로 문화적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유네스코는 ‘신선한 자연의 식재료와 다채로운 장식으로 계절감을 표현하는 와쇼쿠의 뿌리는 자연친화 사상’이라며 ‘지역별로 발달한 특색 있는 음식들이 공동체의 결속에도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사회·문화적 가치 또한 크다’고 등재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불고 있는 ‘와쇼쿠 열풍’은 특히나 주목할 만하다. 초밥을 ‘스시(すし)’, 문어빵을 ‘타코야끼(たこ焼き)’로 표현하는 등 한글로 순화해 표현하던 일본음식을 원어에 가깝게 지칭하는 경우가 많아지며, 국내에서 ‘와쇼쿠’는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됐다. 스시나 돈부리(丼, 일본식덮밥) 같은 전형적 일본음식 외에도 생소한 일본의 토착음식에 대한 관심 또한 늘어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후쿠오카의 대표적 향토음식인 ‘모츠나베(もつなべ, 일본식 대창전골)’가 대표적이다.

  와쇼쿠의 수요가 증가하며 일식 전문점도 급증하는 추세다. 국세청에 따르면, 2006년5200여개였던 국내 일식 전문점 수는 작년 12월엔 1만7657개로 집계돼, 약 10년 만에 3배 이상 되는 성장세를 보였다. 일식 전문점의증가율은 전년 대비 약 15%로 한·중·일·양식 중 가장 높았고, 업종별 순위에서도 카페와 패스트푸드점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최근 유행하는 일식 전문점의 특징으로는 현지의 느낌을 가득 살리는 ‘일본풍’을 꼽을 수 있다. 김상준(경인교대 교육19) 씨는 “얼마 전 규카츠(牛カツ) 전문점에 갔는데, 이국적인 실내 디자인뿐만 아니라 일본식의 1인용 미니화로도 비치돼 있었다”며“현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일식 전문점들은 일본식으로 인테리어를 꾸미는 것뿐 아니라 일본인 점원을 고용하거나 메뉴판에도에비(새우), 니꾸(고기)와 같이 일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예쁘고 독특해··· 젊은 층 ‘취향저격’

  와쇼쿠 열풍의 주요 원인으로는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는 한국인 관광객 수의 증가가 지목된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2017년 일본을 여행한 한국인 수는 약714만 명으로 전년 대비 40.7%나 증가했다. 다른 해외국가들과 비교하면 이러한 일본여행 선호는 더욱 두드러진다. 항공편서비스업체 스카이스캐너(Skyscanner)에 따르면 당해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한 해외여행지의 1, 2, 3위를 오사카, 도쿄, 후쿠오카 순으로 모두 일본이 차지했다. 일본관광청의 조사결과 2018년 3분기 일본 방문객들의 가장 큰 기대요인은 ‘일본음식을 먹는 것’이71.5%로 가장 많았다. 관광을 통해 현지 식사를 접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일식의 맛을 추구하게 되며, 한국에서도 와쇼쿠의 수요가 증가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해산물을 먹는 ‘어식(魚食)문화’가 융성하며 해산물 요리가 발달한 와쇼쿠의 인기가 높아졌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유럽위원회(EC) 공동연구센터(JRC)의 2016년 국민1인당 연간 해산물 섭취량 조사에서 한국은 전 세계 평균(22.3kg)의 약 3.5배인 78.5kg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해산물 섭취문화의 역사가 오래된 일본(58.0kg)보다도 크게 높은 수치다. 선어회(죽인 생선을 숙성시켜 회 뜬 것)와 같은 일본의 고유 어식문화가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등 일본의 어식문화가 한국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밀키트(meal-kit)제조회사 파파쿡 임홍식 대표는 “과거에는 대부분의 한국 횟집이 활어회(살아있는 생선을 즉석에서 죽여 회 뜬 것)만을 취급했다”며 “최근엔 선어회 문화도 대중화돼 기존의 활어횟집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추세”라 밝혔다.

  아기자기함과 우아함을 전면에 내세우는 일본식 디저트 전문점 또한 최근 크게 유행 중이다. 폭신폭신하고 앙증맞은 외형이 특징인 일본식 롤케이크 ‘도지마롤’과 알록달록한 색감이 눈을 사로잡는 당고(団子)가 대표적이다. 일식요리학원 타츠원(立つ園)정유나 원장은 “와쇼쿠는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라는 극진한 접객문화를 바탕으로 방문한 손님을 기분 좋게 만드는 예쁘고 정성스러운 음식과 안락한 분위기를 강조한다”며 “이러한 문화적 특성이 ‘개인의 행복’을 강조하고 이를 SNS로 표출하길 욕망하는 최근 젊은 세대의 경향과 잘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자기표현의 시대’가 와쇼쿠 열풍과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이다. 음식사진 찍기를 즐긴다는 임창희(남·20) 씨는 “일식은 색감이 다양하고 구성도 정갈해 확실히 보는 재미가 있다”며 “가게 내부의 분위기도 독특하고 좋아 음식사진을 찍기에는 최고”라고 말했다.

 

  변종과 시도, 한식에도 아이디어 될까

  비단 한국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와쇼쿠는 크게 사랑받는 음식문화다. 특히 와쇼쿠는 가장 성공적인 음식문화의 세계화 사례로도 손꼽히고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2017년 해외일식당 수는 지난 5년 새 2배 이상 증가해 약 11만8000개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해 한식진흥원이 발표한 해외한식당 개수(3만3499개)의 약 3.5배에 달한다.

  와쇼쿠 세계화의 상징적 음식은 ‘캘리포니아 롤’이다. ‘캘리포니아 롤’은 서양인들이 거부감을 갖던 날생선이 아닌 아보카도와 게살 등 미국 본토의 식재료로 속을 채운 후 달짝지근한 소스를 뿌려 현지인의 입맛을 겨냥한 ‘변종스시’다. 재료 그 자체의 맛을 중시하는 정통 스시의 개념과는 다르지만 ‘롤 스시’는 세계화에 크게 성공해, 이제는 정통 스시의 보급에도 기여하고 있다. 정유나 원장은 “날 것 그대로를 강조하는 스시의 원관념에만 집착했다면 세계화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한식도 전통을 비트는 과감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세계화가 수월할 것”이라 내다봤다.

  이러한 일본의 사례가 한식의 세계화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한식 세계화’를 국책사업으로 설정해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해왔다. 한식재단(현 한식진흥원)을 출범시키고 연 200억 원 가량의 예산을 투입하며 한식 홍보에 주력했지만, 정작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최희종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원장은 “한식세계화 성과가 미진한 까닭은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착한 이벤트성사업들만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역할이 지나치게 강조돼 민간의 활동범위가 한정됐던 것도 문제”라고 분석했다.

  한식의 이미지를 정립해 ‘브랜드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희종 원장은 “와쇼쿠의 세계화는 단순히 음식만이 아닌 이미지의 성공”이라며 “깨끗함·친절함과 같은 긍정적 이미지를 음식에 투영해 음식문화를 성공적으로 브랜드화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최 원장은 “음식은 단순한 상품이 아닌 식재료와 조리법, 그에 얽힌 역사와 문화 등을 아우른다”며 “한식도 단순히 요리를 수출하고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적 정체성을 투영한 음식문화를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박진웅 기자 quebec@

인포그래픽|중앙일보 디자인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