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혁(남·29) 씨가 겪은 중고나라 사기사건 판결문에 사기범의 수법이 담겨있다. 사진제공|유상혁 씨
유상혁(남·29) 씨가 겪은 중고나라 사기사건 판결문에 사기범의 수법이 담겨있다.
사진제공|유상혁 씨
영화 <오늘도 평화로운>은 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고나라 사기를 그려냈다.
사진제공|백승기 감독

  #. 영준(손이용 분)은 중고나라 사기를 당했다. 150만 원짜리 노트북 대금을 입금한 지 오래, 판매자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영준은 경찰서를 찾아갔으나 돌아온 건 “사건해결이 어렵다”는 말뿐이었다. 고뇌하던 영준은 직접 중고나라 사기 범인을 잡으러 중국으로 떠난다(영화, ‘오늘도 평화로운’).

 

  중고나라는 한국 최대의 중고거래 사이트다. 회원 수는 약 1700만 명에 달한다. 숫자로만 따지면, 전 국민의 40%가 이 사이트에 가입한 셈이다. 하지만 중고나라가 매일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인터넷 사기 때문이다. 연간 10만여 건 발생하는 인터넷 사기 대부분은 중고나라에서 발생한다. 이런 중고나라를 풍자하는 의미로 인터넷상에선 ‘오늘도 평화로운 중고나라’라는 말이 유행한다.

 

  중고나라 사기에 결혼자금 날아가

  지난 4일 개봉한 영화 <오늘도 평화로운>은 백승기 감독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백승기 감독은 2018년 150만 원가량의 노트북 사기를 당한 적 있다. 옛날 중고나라 사기범은 벽돌이나 상자라도 보내줬지만, 몇 년 전부턴 이마저도 보내지 않는다. 그때를 회상하던 백승기 감독은 “정말 힘들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영화를 준비하던 중이라 한 푼 한 푼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당시 백승기 감독에게 ‘인생의 쓴맛’을 알려준 사기범은 해외 범죄조직의 일원이었다.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사용하던 터라 검거가 어려웠다. 결국, 범인은 잡지 못했다. 영화 <오늘도 평화로운>은 백승기 감독의 소심한 복수다.

  유상혁(남·29) 씨는 2018년에 중고나라 사기를 당했다. 유 씨는 중고나라에 매물로 올라온 상품권을 구매했다. 해당 상품권은 시세보다 상당히 저렴했다. 액면가의 8~90%정도 가격이었다. 대신 구매 조건이 있었다. 상품권 구매 후 약 한 달 후에 상품권을 발송해준다는 것이다. 유 씨는 “미심쩍었지만, 시험 삼아 상품권을 소액 구매했다”고 전했다. 이후 상품권이 약속대로 오자, 유 씨는 신뢰를 갖고 다시 상품권을 구매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 상품권은 오지 않았다.

  해당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사기범은 상품권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서 현금을 마련하고, 그 돈을 암호화폐에 투자했다. 암호화폐로 돈을 불려 약속대로 상품권을 지급하고, 차익을 얻으려는 속셈이었다. 사기범은 처음에는 투자로 수익을 올렸다. 그래서 예정대로 상품권을 보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 마련한 현금을 대부분 잃고 말았다. 편취액은 약 6억 원이다. 사기범 때문에 결혼자금 수천만 원을 피해 본 사람도 있다. 피해자들은 배상명령을 신청했지만, 사기범에게 남은 재산이 700만 원뿐이라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이렇게 다양한 중고거래 사기 피해가 발생하는 가운데, 사기피해자 대다수는 20대다.

 

  많이 이용하고, 더 취약한 20대

  중고거래를 가장 활발히 하는 연령층이 20대인만큼, 중고나라 이용자의 상당수가 20대다. 그 이면에는 ‘중고 인터넷사기 피해자의 대부분이 20대’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인터넷 사기 피해 정보공유사이트 더치트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2006~2015년 10년간 사례로 접수된 피해자의 41.62%가 20대다.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많은 비중이다. 10대는 15.2%, 30대는29.9%를 차지했다. 또 자료에 의하면 인터넷 사기 대부분은 중고나라에서 발생한다. 더치트에 접수된 인터넷 사기의 약 70%는 중고나라에서 발생한 거래 사기다. 더치트 관계자는 “인터넷 사기 중 중고나라 사기피해의 비중이 변함없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2006년 1월~2019년 3월간 발생한 인터넷 사기 피해 총액은 1304억4000만 원가량이며 피해 사례 수는 38만 건에 육박한다. 피해물품 비중으로는 휴대폰/주변기기가 6만7000여 건으로 1위, 티켓/상품권이 2만6000여 건으로 2위를 차지했다. 경찰청 역시 △유명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티켓 △희귀 전자제품 △고가 명품 등을 미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사기가 전체 인터넷 사기의 66%라고 밝혔다. 백승기 감독과 유상혁 씨 모두 주요 인터넷 사기 유형에 당한 것이다.

  인터넷 사기 수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인터넷 시장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자연스레 인터넷 사기범죄 수도 늘어나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11조 8939억 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22.6% 증가한 것이다. 이와 함께 인터넷 사기 수도 늘어났다. 경찰청 사이버범죄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4년 5만7000여 건에 달한 인터넷 사기는 2018년에 11만 2000여 건으로 늘어났다.

 

  범인 잡기도 피해 변제도 어려워

  백승기 감독의 사례처럼, 사기범이 해외에서 조직적으로 대포통장, 대포폰을 이용하는 경우 사기범을 검거하기 어렵다. 혜화경찰서 사이버수사팀은 “본인 명의 계좌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언젠가 검거할 수 있다”며 “해외에서 범죄를 조직적으로 꾸미는 경우는 사건 처리가 난망하다”고 말했다. 검거하더라도, 피해 금액을 변제받기가 어렵다. 사기범은 대개 범죄로 얻은 수익을 현금으로 인출해 유흥 등에 지출하기 때문이다. 물론 유상혁 씨처럼 피해 변제를 위해배상명령을 신청할 수도 있다. 더치트 관계자는 “배상명령 신청을 통하면 원금을 회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성북경찰서 관계자는 “중고나라 사기 피해를 입으면 피해금액을 온전히 변제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했다.

  따라서 처음부터 사기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찰청은 △사이버캅 앱, 더치트 등을 통한 판매자 사기피해 신고 전력 확인 △‘파격할인’과 같은 허위광고에 대한경각심 △직거래 습관 등을 강조했다. 혜화경찰서 사이버수사팀은 “공공기관이 알려주는 사기 예방법이 유치하고 간단해 보일지라도 상당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휴일 직전이나 휴일 거래는 지양하는 것이 좋다. 휴일에는 은행이 휴무해 계좌 지급정지와 같은 조치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경찰 측이 은행의 협조를 구하기 어려워 사건파악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수수료를 소액 부담하더라도 안전결제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안전결제란, 구매자가 대금을 보내면 특정업체가 이 돈을 보관해두고 있다가 상품이 정상 배송되면 업체가 판매자에게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다만 사기범이 ‘가짜안전결제’ 링크를 보내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백승기 감독도 가짜 안전결제링크에 당했다고 했다. 백승기 감독은 “중고거래에 익숙하지 않아 사기범이 보낸 링크가 안전결제 링크인 줄 알고 결제했다”며 “전형적인 수법인 줄은 당시에 몰랐다”고 말했다. 편리하고 저렴한 거래를 위해인터넷을 이용하지만, 평화로운 오늘의 거래를 위해선 약간의 불편과 비용을 감수하는 미덕이 필요하다.

 

김태훈 기자 foxtrot@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