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200만 종이 넘는 다양한 종류의 생물이 살고 있다. 그중 곤충은 무려100만 종으로 전체 생물 종의 절반을 차지하며, 그 수는 전체 동물의 약 75%에 이른다. 다양성과 방대한 개체수를 가진 ‘곤충’은 학계에서도 연구 가치가 충분하다. 본교에도 곤충 연구에 방점을 둔 기관이 있다. 바로 1963년에 설립돼 56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려대학교 부설 한국곤충연구소(소장=배연재 교수)’다. 곤충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하고 있는 곤충연구소, 그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알아봤다.

 

  ‘한국의 파브르’ 조복성 교수가 개소

  생명과학관 서관 L210호에 위치한 한국곤충연구소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사라지는 곤충들을 보호하고, 생물 다양성의 기초가 되는 한국 곤충상을 정리하는 등 한국의 곤충학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현재는 순수곤충 연구뿐만 아니라 곤충으로 유발되는 사회현상에 대한 자문, 곤충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의 역할 또한 수행하고 있다.

  한국곤충연구소 설립은 고려대학교 자연계열의 발전과 그 맥을 같이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대학들이 본격적으로 설립되면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연구소들 중 하나가 바로 한국곤충연구소다. ‘한국 곤충학의 아버지’, ‘한국의 파브르’라 불리는 조복성 교수는 자연과학의 모태가 되는 박물학(동식물이나 광물의 종류와 성질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학문)의 선구자로, 해방 이후 본교 동물학 교수로 부임해 본격적인 곤충학, 동물학연구를 펼쳤다. 조복성 교수는 각종 곤충학 교과서와 곤충 도감을 집필함과 동시에 1963년 3월 1일 ‘고려대학교 부설 한국곤충연구소’를 설립했다. 배연재 한국곤충연구소 소장은 “조복성 교수는 국내 곤충학연구의 선구자”라며 “연구소 이름을 곤충연구소가 아닌 ‘한국곤충연구소’라 지은이유도 그 설립자가 한국을 대표하는 학자인 조복성 교수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곤충연구소가 설립된 1960년대, 70년대에 곤충학에서 가장 연구가 시급했던 문제는 작물과 산림에 피해를 주는 해충이었다. 초창기 연구소에서는 산림에 있는 송충이의 방제 연구, 소나무에 해를 입히는 솔잎혹파리 방제 연구 등 국가적 방제를 위한 연구를 주로 수행했다. 방제 연구와 더불어 국내 곤충의 분포를 파악하기 위한 곤충분포도감 제작 연구도 이뤄졌다.

 

  ‘곤충에 대한 모든 것’ 연구하는 연구소

  곤충연구소는 현재 곤충으로 유발되는 사회문제의 해결, 국내 생물 다양성 관찰, 유전자 분석을 통한 멸종위기종 복원 등 곤충과 관련된 전반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곤충의 방제와 분포 등을 연구하던 과거에 비해 더 다양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한 것이다.

  최근 부각되는 연구 중 하나는 ‘이물의 동정’에 관한 연구다. 식료품에 이물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위생에 관한 사회문제가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식료품에 들어가는 이물 중 80%는 곤충이다. 상업적인식품에 곤충 이물이 들어갔을 때 그 형태나 DNA 분석을 통해 어떤 곤충인지에 대한 판별이 먼저 이뤄진다. 어떤 곤충인지를 판별하면 그 특징이나 서식조건을 알 수 있어 유통과정에서 들어갔는지, 제조과정에서 들어갔는지 그 책임소재를 파악할 수 있다.

  변화하는 생태계를 관찰하기 위한 모니터링 연구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강에서 자생하고 있는 저서성 대형무척추동물(수서곤충처럼 물속 바닥에 사는 무척추동물)의 모니터링이 대표적이다. 한국곤충연구소 소속 황정미 연구교수는 “한국곤충연구소는 1980년대부터 4년에 한 번씩 한강에 살고 있는 저서성 대형무척추동물을 연구하고 있다”며 “이는 한강 생태계의 환경 변화나 생물 다양성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를 통해 축적된 30년이 넘는 기간의 정보는 한강의 환경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2004년부터는 월드컵공원의 저서생물 모니터링도 이뤄지고 있다. 2002년 난지쓰레기공원이 매립되고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면서, 생물의 유입 경로와 생태 안정화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전에 이뤄지던 방제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모기 방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수개월동안 출몰하는 국내 모기뿐 아니라 1년 내내 피해를 주고 있는 해외의 모기까지 방제하기 위해서다. 디지털 모기 모니터링 장치를 이용해 모기가 드나드는 곳을 감지한 후, 천적인 잔물땡땡이로 방제하는 과정을 거친다. 한국곤충연구소는 작년 5월과 10월 안산시에서 시범적으로 방제 사업을 진행했으며, 곧 여러 지자체에 모기 방제 매뉴얼을 배포할 예정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동남아의 모기 방제를 위해 현지에서 자생하는 천적을 대량 증식시켜 방제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곤충 연구에는 아직 미개척된 분야가 많다. 100만 종에 달하는 곤충을 전부 연구하기 위한 인식이나 접근 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카 바이러스나 뎅기열 등 곤충이 옮기는 질병 분야, 농작물과 육류를 대체할 수 있는 식품 분야, 곤충의 모습을 본 따 기계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생물모방 기술 등 앞으로 진행될 연구 및 곤충 활용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배연재 소장은 “곤충은 그 활용 분야가 다양한데도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아 ‘블루오션’이라 할 수 있다”며 “많은 학생들이 곤충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바람을 드러냈다.

 

  ‘고려대학교 자연과학박물관’ 건립을 위해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는 있지만, 곤충연구소의 연구 진행 상황이 마냥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생명공학의 ‘붐’이 일어나고, 첨단화의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곤충학은 분류, 생태, 방제만을 연구하는 ‘다소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분야’라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연구소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줄어들었고, 연구소 평가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아 존폐 위기에 처한 시기도 있었다. 또한, 한국곤충연구소의 표본실은 100만 점이 넘는 표본을 보유해 국내 대학 최대 규모를 자랑하지만, 곤충학이 도외시되면서 표본을 관리할 인력과 지원이 부족해지고 있다.

  이에 한국곤충연구소는 표본의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관리와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촉구를 목적으로 ‘고려대학교 자연과학박물관 건립 추진위원회’를 발족해 ‘자연과학박물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백주년기념관에서 고려대의 역사와 인문학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인문사회캠퍼스와는 달리, 자연계캠퍼스에는 자연계의 기초적 과학 자료들을 전시하고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이 전무하다. 한국곤충연구소 주도로 ‘자연과학박물관’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기초과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여전히 설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물관은 표본 전시가 가능할 뿐 아니라 본교의 자연과학 역사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자연과학박물관’ 설립은 중요한 과제다. 배연재 소장은 “‘자연과학박물관’에는 곤충연구소의 곤충 표본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캠퍼스에서 축적해놓은 동식물, 곤충, 생체재료 등 다양한 자연과학의소재가 전시, 관리, 연구, 교육되길 바란다”며 “‘자연과학박물관’은 자연과학 분야의 역사를 기록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 | 전남혁 기자 mike@

사진 | 한예빈 기자 l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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