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냐?” 지난 촛불정국 때 등장했던 이 말에는 국가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기반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담겨있다. 이른바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대통령 탄핵이 이뤄진 건 국가라면 적어도 지켜져야 할 법조차 무시됐던 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새로 들어선 후 지금껏 끝없이 강조됐던 것이 적폐청산이고, 그 적폐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이 사법정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이라는 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가 됐다. 그래서일까. 최근 드라마들 속에서 유독 많이 등장한 것이 정의의 문제다. tvN <비밀의 숲>이 검찰 개혁의 문제를 정면에서 건드리며 호평을 받은 이후, 검사들은 형사와 함께 드라마의 단골 직업으로 떠올랐다. 이런 흐름은 최근 SBS <열혈사제> 같은 작품이나 tvN <자백> 같은 작품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대중들의 사법정의에 대한 갈증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인지라, SBS <해치> 같은 사극은 더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조선시대 사헌부(지금으로 치면 검찰)의 상징물이었던 해치를 제목으로 따온 이 사극은 영조가 되기 전 천출의 왕자라는 이유로 방황했던 연잉군(정일우)이 어좌에 앉기까지의 치열한 성장 과정을 다뤘다. 흥미로운 건 이 아무런 핏줄과 연줄이 없던 인물이 입지전적인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 담겨지는 사헌부 개혁의 이야기다.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팽팽한 줄다리기 당파 정치 싸움을 하고 있던 당시, 어느 쪽에도 줄이 없던 연잉군이 양 당파를 적절히 이용하고 운용(?)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만들 수 있었던 건 바로 사헌부 개혁을 통한 사법정의의 구현을 통해서였다고 이 사극은 말하고 있다.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노론 세력이나 그들이 한 때 지지했던 밀풍군(정문성) 같은 인물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권력을 농단하고 가난한 민초들을 핍박해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며 나아가 살인까지 스스럼없이 자행하게 된 건 사법정의를 구현해야할 사헌부가 이들과 결탁해 비리를 저지르고 있어서다. 죄를 지어도 처벌을 받지 않는 상황은 이들 권력자들의 세상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이에 죽어나가는 민초들의 현실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심지어 과거시험조차 부정이 횡행해 진짜 인재들은 등용되지 못하고 권력가의 자제들이 자리를 꿰차고 죄의식 없이 비리를 저지르는 현실. 연잉군은 바로 이 사헌부 개혁을 통한 사법 정의의 구현이야말로 저들의 아킬레스건이고 이를 통해 민심을 어루만지는 것이 자신이 가진 유일한 자산이라는 걸 알고 행동한다. ‘천출의 왕자라는 약점은 그래서 이 지점에서는 강점이 된다. 낮은 자들의 민심을 그만큼 더 처절하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해치>는 막연하게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잉군을 선으로 그리고 그가 대적해야할 이들을 악으로 이분화해 그려내지 않는다. 다만 노론과 소론 그리고 왕과 왕자들 사이에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마치 생물 같은 이합집산의 정치를 현실적으로 담아낸다. 사법 정의라는 것 역시 단순한 선악의 문제를 넘어서 정치에 있어서 중대한 선결과제라는 걸 드라마는 보여준다.

  사극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야기하는 드라마 방식이다. 영조의 이야기를 가져온 <해치>가 보여주는 건 그래서 현재 우리가 처한 사법 정의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른바 국민의 심판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는 상황은 그만큼 사법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국민이 굳이 행동으로 나서지 않아도 제대로 사법 정의가 작동한다면, 심판 운운하는 표현은 불필요할 테니 말이다. <해치>가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듯이 사법정의는 나라의 근간이다. “이게 나라냐하는 통탄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반드시 지켜져야 할.

 

정덕현 문화평론가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