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적은 면, 적은 기사, 그리고 자신들의 논란을 담은 기사와 칼럼. 멀리서 전해 들은 소식이었는데 <고대신문>이 힘든 시간을 통과했구나, 생각했다.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도 많이 했을 듯하다. 엘리베이터부터 도서관의 변화까지 학우들의 생활과 관련한 소재들을 잘 선정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몇몇 기사들의 서술방식은 아쉽다. <새로워진 중도 1, 학생들은 아쉬움 남아”> 기사의 경우 단순 사실 서술이 8할이고, 끝부분에 짤막하게 학우들의 아쉬운 점을 표현하고 있다. 제목은 기사의 얼굴이다. 제목에 아쉬움이라는 말을 썼으면,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을 담는 글이야. 그리고 이게 왜 학우들에게 아쉬움을 주고 있고,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이 글은 입증할거야로 가야 했지 않을까. <단신보도> 역시 기획기사 하나가 더 들어갈 분량임에도, 구태여 저렇게 나열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대부분의 내용들이 <고대신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접할 수 있는 사실들이었다. ‘미디어 크리에이터 벙커기사의 경우에는 주제의식 없이 기사가 전개된다. ‘이런 점도 있고, 이런 이야기도 있어라는 백화점식의 서술은 기사를 씀에 있어 지양하는 편이 옳지 않을까. 중심이 없으면 글도, 읽는 독자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몇몇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재정비하고 수준 높은 지면을 발행한 <고대신문> 기자들의 노고는 눈물겹다. 무엇보다 논란과 비판을 대하는 <고대신문>의 태도가 인상 깊었다.

  표현과 언론의 자유냐, 소수자들을 위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냐. 처음 <고대신문> 논란 소식을 접하며 정의라는 게 무엇인지 어렵고 불가해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고대신문>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따지지 않고, 다만 이 사건을 기사로서 지면에 기록한다. 누군가는 비난여론 있다고 사과문을 쓰는 게 언론이냐라고 말하기도 했다지만, 학우들에게 귀를 열고 소통한다는 것. 학보사에게 있어 그것만큼 의미 있지만 어려운 일도 없다.

  지난해 여름, 우연히 연이 닿아 <고대신문> 사무실을 방문했다. 방학의 대부분을 신문사에 나와 소재를 고민한다고 당시 <고대신문> 편집국장이 말했다. <고대신문>은 학보사 기자이던 나에게 큰 자극이 됐다. 그 해 여름처럼 <고대신문>은 다시 고민할 것이다. 인간은 기록함으로 기억하고, 기억함으로 더 나아가고 진보한다. 논란을 기억하고 새기며, 나아가는 <고대신문>을 응원한다.

 

이상환 성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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