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의 한자인증졸업요건 제도에 대한 학생들의 개선 요구가 지속되고 있다. 학생들의 한자이해 소양을 함양하기 위해 2004년 도입된 한자인증졸업요건(한자인증)2011년 이후 단과대 자율에 맡겨진 후, 현재는 24개 학과에서 시행 중이다. 하지만 한자인증이 본래의 시행 취지에 벗어난 유명무실한 제도가 됐다며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자인증졸업요건 도입의 역사

  한자인증은 어윤대 총장 재임 시기에 도입됐다. 당시 학교본부는대학생의 기초적인 학문 소양을 위해서는 한자에 대한 이해와 구사 능력이 필요하며 기업체 등 사회적인요구에도 부합한다는 이유로 2004학년도 입학생부터 한자인증을 졸업요건으로 강제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한자인증에 지속해서 불만을 제기해 왔다. 20114월 안암총학생회는 비상학생총회를 열어 학교 측에 한자졸업요건 폐지를 요구했고, 학교 측은 5한자인증의 졸업요건유지를 단과대 자율에 맡기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6월 법과대를 시작으로 이과대, 정경대 등이 폐지 의사를 밝혔다. 이후 2012년 의과대도 한자인증 폐지에 합류했다.

  2014년에는 공과대학생회가 주도해 한자인증졸업요건에 대한 공과대 학생 정책투표가 이뤄졌다. 공과대학생회는 이를 바탕으로 공과대학장과 면담을 가졌고, 그 결과 건축사회환경공학부와 산업경영공학부를 제외한 5개 학과가 한자졸업요건을 폐지했다. 건축사회환경공학부측은 당시 교수 회의에서 한자인증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학과특성 상 전공서적에서 나오는 용어 등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한자이해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유지이유를 설명했다.

  현재 2019학년도 1학기에는 경영학과와 국어교육과 등 24개 학과가 한자인증을 유지하고 있다. 한자인증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공인 한자능력인증시험에서 2급 이상을 취득하거나, 교내 한자이해능력인증시험에서 3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한문학과 부설 연구소인 한자한문연구소에서 교내 한자시험을 주관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수요에 맞춰 특강도 개설하고 있다. 한문학과 학과장 임준철(문과대 한문학과) 교수는 교내 한자시험은 쓰기 능력을 중시한 외부 시험과 달리 독해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실효성 못 느낀다는 학생들

  일부 학생은 한자졸업요건이 학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공이나 진로에 한자이해 능력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학과 학생들에게도 졸업요건으로 적용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윤준석(문과대 독문13) 씨는 인문계 학생들도 한자이해 능력이 전공과 무관한 경우가 많다“4년 동안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한자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과대 14학번인 강모 씨는 학과가 한자어와 밀접한 연관이 있지만 한자를 모른다고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진로도 일반 사무직을 지향해 한자이해 능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자졸업요건 제도에 실효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은 보통 졸업을 앞두고 일주일 이내의 매우 짧은 기간을 할애해 한자시험을 준비한다. 이 경우 학생들은 암기 위주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고 단기 기억력에 의존하는 등 졸속으로 시험 준비를 하게 된다. 특강에서 강의한 내용이 시험에 대체로 등장하다 보니, 학내커뮤니티 고파스에서는 한자 특강 필기 매매가 이뤄지기도 한다.

  학생들은 한자졸업요건의 향방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이동학(문과대 한문16) 씨는 사회인으로서의 기본 소양은 시대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한다진로에 도움이 되면 스스로 한자 공부를 할 것이기에 차라리 필요한 학과들에만 존속시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권정은(불어불문학과 12학번) 교우는 한국어 사용에 한자이해 능력이 주는 순기능이 있기 때문에 시험 체제를 실용성 있게 개편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수의 학생들에게 한자졸업요건을 강제하는 곳은 고려대와 중앙대뿐이다. 중앙대는 2012학년도 입학생부터 공인 한자능력 자격시험에서3·4급 이상을 취득하거나 한자 관련수업 2개 수강을 요구하고 있다. 중앙대 재학생 김모 씨는 동기부여 없이 졸업을 위해 자격증을 준비해서 공부가 힘들었다단순 암기력에 의존해 자격증을 따 한자이해 능력도 크게 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총학, 한자졸업요건 개선 요구 중

  서울총학생회(회장=김가영, 서울총학) ‘시너지는 선본 시절 교육권 부문의 주요 공약 중 하나로 한자인증졸업요건 개선을 내걸었다. 각 학과 학생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한자졸업요건개선TF를 통해 4월 교육권리찾기운동에서 한자인증을 주요 의제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이상형 교육정책국장은 한자졸업요건같이 지속되는 교육권 의제들에 대해 일반 학우들이 효능감을 얻게 하는 것이 교육권리찾기운동의 목표라며 서울총학은 공론장안에서 문제점을 발제하는 등 문제해결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자졸업요건개선TF에 소속된 문과대 비상대책위원회는 9일 패널 좌담회 형식의 공론장을 조성해 한자졸업요건에 관한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황은진 문과대 비상대책위원장은 한자에 대한 이해 능력이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한자졸업요건은 족집게 식 강의를 외워 취득하는 유명무실한 제도라며 문과대 학장단 측에서도 한자졸업요건의 개선 요구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고 밝혔다. 이에 임준철 교수는 졸업요건을 유지하기로 결정된다면 개선 방안에 대해서 한자한문연구소가 충분히 자문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학술지에 대학 교양 한자 교육의 목표와 방향이란 글을 게재한 김우정(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한자를 접해본 경험이 적은 학생들이 졸업요건을 임박해서 준비하다보니 반발이 큰 것으로 보인다그렇지만 한자는 우리 언어문화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학생들에게 졸업 직전이 아닌 저학년 때부터 그 중요성을 주지시키고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한 교재 등 맞춤형 교육을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이정환 기자 ec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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