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1871호에 <종단횡단> ‘익지 않은 사과는 쓴 맛일 뿐이 게재된 지 어느덧 3주가 지났다. 이에 본지는 칼럼과 외부 피드백에 대한 고대신문의 대응에 관해 학생, 교수, 언론인, 인권단체의 여러 의견을 구했다.

 

  일간지 기자 A

  논란이 된 고대신문 칼럼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표현의 자유였을 겁니다. 그러나 그 칼럼에서 굳이 성소수자 사례를 예로 들었어야 할까요. 외국인이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나 비하로 읽힐 수 있는 문장을 피하는 것과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글의 사실 관계나 논리의 문제가 아닌 배려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본인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이 칼럼을 거르지 못한 데스크에도 그에 못지않은 책임이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칼럼에 대한 대학 구성원들의 강한 의견 표명에 대해 고대신문이 입장을 밝히는 일은 필요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절차와 방식이 적절했는지는 의문입니다. 고대신문은 주 단위로 호흡하는 주간지입니다. 신문에 실린 칼럼에 대한 외부의 목소리에 다음번 신문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면, 좀 더 시간을 갖고 사건을 신중히 바라본 뒤 현명하고 차분한 의견을 낼 수 있었을 겁니다.

 

  중앙성소수자동아리 사람과사람모니터링부장

  저희가 더 문제시하는 점은 그 혐오 발언 자체가 아니고, 이를 자유로움이라는 덕목으로 미화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고대신문은 을 가진 매체라 학우들, 그리고 사회구성원들의 인식 체계와 사고 과정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렇기에 해당 칼럼은 매우 큰 사회적 악영향을 끼쳤고, 끼치고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 <무엇이 일반적이고 무엇이 비일반적인가>나 동성애반대학생연합의 <고대신문 기자를 향한 마녀사냥을 멈춰라> 등 여러 혐오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데 고대신문의 책임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온라인 사과, 오프라인 자보 게시, 지면 사과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일입니다. 온라인, 오프라인 게시는 이루어졌으나, 지면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에 대해서 굉장히 유감입니다. 지면에서 벌어진 일은, 지면에서 사과한다는 언론으로서 가져야할 당연한 태도마저 갖추지 않은 고대신문 측의 반응에 사람과사람측은 깊은 분노를 느꼈습니다. 또한, 칼럼 작성자의개인 사과문도 없었으며 징계 계획도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내부적으로 해당 기자를 용서하고 감싼다고밖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대응은 사람과사람, 더 나아가 성소수자에 대한 기만입니다.

 

  학부생 B

  해당 칼럼은 우리 사회의 인권에 대한 논의를 좀 더 정확한 방법으로 이끌어나가고자 했습니다.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혐오에 대한 긍정, 부정에서 벗어난 방법론적인 이야기였기에 비판의 대상이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혐오논란을 일으킨 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고대신문의 대응입니다. 개인적으로, 두 번의 굴욕적인사과문은, 언론의 역할을 영정에 담아 올리는 두 번의 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혐오표현이 전혀 아님에도, 또는 그렇게 충분히 주장할 수 있었음에도 그것을 포기했습니다. 고대신문은 사과문을 통해 스스로 혐오표현을 게재한 언론임을 자처했습니다. 해당 논란을 가장 빨리 잠재울 수 있는, 그리고 가장 하기 쉬운 조치를 택했다고 보입니다.

  둘째, 내부 시스템의 질서와 체계가 상당히 연약함을 드러냈습니다. 우선 비난 여론에 당황한 나머지 내부적 승인(기획간사와의 조율) 없이 조급하게 입장문을 올렸습니다. 또한, 1차 사과문에서 해당 칼럼은 편집국 전체의 의견은 아니라며 해당기자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이는 책임 회피를 위해 조급하게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 비쳐 고대신문에 옹호적이던 독자들에게마저 신뢰성을 잃는 계기가 됩니다.

 

  이상환 성대신문 편집국장

  ‘말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하는 것과 모든 주장을 권장하고 보호하는 것은 다릅니다. 칼럼은 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칼럼의 주장은 위험합니다. 타인을 불쾌하게 할 권리, 상대를 모욕하고 비난할 권리까지 용인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칼럼은 모든 의견이 왜 무조건 인정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어떠한 근거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단지, ‘민주주의 사회는 그래야 한다는 당위로 근거를 대신할 뿐입니다.

  논란이 된 문장이 혐오표현인가에 대해서는 읽는 이에 따라 생각이 다를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 문장이 혐오표현이라고 문제 제기한다면, 그럴 여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대신문이 사과문을 작성해야 했는지는 의문입니다.

  고대신문은 비판에 대해 사과문을 작성하기보다는 내부에서 더 긴 시간 고민하고 토론했어야 합니다. 외부의 비판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이게 왜 문제인지’, ‘정말 문제는 맞는지’, ‘기자들의 표현의 자유정치적 올바름중 고대신문은 무엇에 중점을 둬야할지 내부적으로 더 길게 토론하고 고민했어야 합니다. 변화는 신문으로서 보여주는 것이지, 사과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 1년차 기자 C

  해당 칼럼이 한 번 더 강조하려 했던 이성애는, 힘을 가진 취향입니다. 많은 이들은 남성(의 겉모습을 한이)에게 여자친구가 있는지를 묻되 당신은 이성애자인가요? 동성애자인가요?” 라고 묻지 않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공개적인 곳에 글을 내어놓는 기자라는 사람이, 취향과 의견이 가진 위치와 위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건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를 불필요하게 날려버리는 일종의 직무유기라 생각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기사로 발생한 문제는 기사라는 형식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일부 의견을 존중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렇게 기획기사를 진행하는 것 또한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지면에서 발생한 문제를 지면 내에서 해결하는 것도 충분히 지혜로운 일이지만, 구성원들의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면 대자보나 기타 방법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심기용 활동가

  흔히 오해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의미하는 바는 표현이 자유로워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하는 주체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논의하려면 표현의 주체들이 놓인 환경과 구조에 어떤 권력이 작동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글쓴이는 사과가 강요되고 있다는 상황을 위압적이라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문제된 발언이 소수자 집단을 비규범적으로 평가하고 소외시키는권력으로 작동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그 점을 이해한다면 소수자들을 주변화하는 말이 소수자들의 (글쓴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민주사회의 위협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대신문의 첫 번째 사과문이 재발 방지 대책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던 건 확실히 아쉽습니다. 고대신문이 두 번째 사과문의 내용을 지속적, 체계적으로 충실히 수행해나가길 바랍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칼럼 자체는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 자체는 옳습니다. 하지만 강의실에서의 사과 요구를 두고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평가는 매우 안이하고 무책임했습니다. 왜 그런 거친 사과 요구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에 대한 성찰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 칼럼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학내에는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구성원 자격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수자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배제하려는 시도에 맞서서 소수자 권리를 지키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칼럼에는 이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도 없이, 그저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피상적인 평가와 함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앙상한 주장만 펼치고 있습니다.

 

  방송국 기자 D

  성급한 일반화가 성소수자에게는 분명 민감할 수 있는 사안이죠. 그러나 실제 있었던 일과 그 발언을 인용했을 뿐입니다.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당시 상황과 칼럼 뒷부분의 강요된 사과가 연결되며 성소수자 입장에선 그 불쾌감이 배가 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 문제로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 사과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사과까지 요구하는 것과 그에 응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정기적으로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의식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정도가 적절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칼럼에 대한 사과라면 그 사과 방식도 그 칼럼에 관여한 모든 사람과 논의 후 결정하면 됩니다.

 

박성수 기자 fourdollars@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