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관단국대 강사
김달관
단국대 강사

 

  작년에 베네수엘라 국민의 평균 몸무게가 11kg가량 감소했다. 또한 총가구의 80%가 음식부족 상태에 있다. 최근에는 정전사태로 피해가 확대되었다. 2018년 제헌의회를 통한 대선에서 현재의 마두로가 승리했고 20191월에 대통령에 다시 취임했다. 그러나 국회의장이었던 과이도는 헌법 규정상 대통령 유고시에 국회의장이 임시대통령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자신이 임시 대통령임을 주장했다. 20185월에 실시된 대선이 주요 야당후보가 가택연금 등으로 출마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치러진 불법선거여서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미국 등 중남미 여러 국가는 과이도를 대통령으로 인정했으나, 중국·러시아·볼리비아·쿠바는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두 명의 대통령이 존재하는 형국이 되었다.

  20세기 초반까지 베네수엘라의 전통적 수출품은 커피였다. 그러나 1926년부터 베네수엘라의 1위 수출품은 석유로 바뀌었다. 이후 베네수엘라는 석유수출에 의존한 지속적 성장을 이루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석유는 국민에게 친정부적 성향을 형성시켰고,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낙관론을 제공했다. 그러나 정치인의 부패와 독재로 인해 1958년 중도좌파의 민주행동당(AD)과 중도우파의 기사당(COPEI) 지도자들이 휴양지인 푼토피호(Punto Fijo)에서 정치협약에 서명했다. 푼토피호 체제는 1998년 차베스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40년 동안 존재했던 과두체제라 할 수 있고, 그것은 내부적으로 엘리트 간에 협력을 중시했으며, 외부적으로 폐쇄적인 체제였다. 국가개입과 보호주의에 의거한 발전모델로서 석유에 기초한 체제였다. 또한 정치적 안정을 중시했고 행정의 일관성을 무시하게 되면서 부패가 형성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석유매장량은 세계1위로서 우리나라가 약 35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에서 석유는 네덜란드 병이라는 현상이 발생시켰다. 즉 석유수출에 따라 많은 외화가 국내에 유입되면서 국내통화가 평가절상되었다. 이에 베네수엘라의 제조업 수출이 감소했고 수입이 증가하면서 탈제조업화탈농업화가 발생했다. 즉 베네수엘라는 제조업이 형성되기도 전에 네덜란드 병으로 제조업이 붕괴되었고 탈농업화가 서서히 진행되었다. 차베스 정부까지 농산물 수입이 약 70%를 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석유수익에 의해 대부분을 수입하여 사용하는 기형적인 산업구조·경제구조가 형성되었다. 베네수엘라는 1982년 외채위기를 겪었고 1989년에 페레스 대통령이 신자유주의를 도입하게 되면서 대중봉기로 1500명이 사망했다. 이후 경제성장 하락과 부패, 양극화, 빈곤이 증가했다. 1992년 차베스가 쿠데타를 주도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1998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2년의 2번의 쿠데타와 2004년 차베스의 탄핵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시까지 반차베스 세력과의 지속적인 갈등과정은 차베스를 급진적으로 선회하도록 했고 이후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차베스가 20133월 암으로 사망하면서 동년 4월 대선에서 마두로가 승리했다. 기본적으로 마두로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차베스의 정책을 계승했다.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200028%에서 201741%로 증가했는데, 2017년에 복지비용이 상승한 것은 2018년 대선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석유가격하락으로 재정수입이 축소되었는데도 과도하게 복지비용을 사용했다. 따라서 석유가격하락 이전에도 정책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석유이권을 노리고 베네수엘라 보수기득권의 결탁과 각종 제재를 통해 경제의 자력기반을 붕괴시키면서 위기를 촉발시키고 있다. 마두로는 예전에 사회소외 계층과 군부의 지지를 받았다. 현재 마두로는 서민의 지지를 상실했으나 군부의 지지를 토대로 국가기관을 통제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제재와 마두로의 실정 및 부패로 인해 죄 없는 일반국민의 삶은 더 어려워졌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