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제약회사에 취직했다던 지인의 오빠 이야기를 들었다. 취업한 당시의 부푼 기대감과는 달리 요즘엔 ‘울며 겨자 먹기’로 주말까지 출근한다는 거다. 저번 주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에 52시간 이상 근무할 수 없지만, 나름의 대안으로 출입 카드를 찍지 않은 채 출근해 밀린 업무를 처리한다고 한다. 위에서 지시도 없었고, 자발적이지도 않지만, 그는 이번 주말도 회사에 반납한다.
고용노동부는 작년 2월 국회에서 통과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근거로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했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대상인 직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의 경우 시스템 재정립에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작년 7월부터 6개월간의 계도기간을 거쳤다. 이후 3개월의 추가 계도기간이 종료된 후, 주 52시간 근무제는 4월 1일 본격적으로 처벌이 가능한 선까지 다가왔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취지는 더할 나위 없다. ‘저녁이 있는 삶’, 얼마나 좋은가. 직원들의 워라밸(Work-life balance), 사업장의 업무 환경 개선 등, 긍정적 효과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꼼수 근무, 재택 근무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은 아직 먼 듯하다. 처리해야 할 업무의 양은 그대로인데 일할 시간만 줄었으니 ‘사’ 측과 ‘노’ 측 모두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거다.
집중 근로가 필수인 IT업계, 건설업체, 제조업체 등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결코 지킬 수 없는 법이라며 호소하고 있다. 그나마 대책이라 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 법안 또한 여야 간의 불필요한 실랑이로 국회에 묶여있는 상황이다.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는 문제인 만큼 노동자와 고용인 관계없이 어려움에 허덕인다. 이에 정부는 직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 중 17곳의 처벌을 또다시 유예했다. 제도의 문제를 알면서도 처벌하지도, 개선하지도 않으려 하니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근로시간 단축→임금 축소→고용 확대라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출발한 ‘주 52시간 근무제’는 역행하고 있다. 취업률은 줄었고, 최저임금은 올랐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가 이뤄진다 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이 원래 목적이었건만, 청와대 게시판의 ‘일을 더 하게 해달라’는 청원은 오히려 늘었다. 정부가 책상 앞에서 꺼내는 ‘정책을 위한 정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국민이다. 이제는 국민을 위한 현실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김예진 문화부장 sier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