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속 4월의 페이지가 펼쳐졌다. 창밖엔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화사함을 뽐낸다. 동시에 새 학기의 설렘은 누그러진 채, 책상 위 쌓인 과제와 책을 보며 한숨 쉬는 학생들의 모습도 하나둘 보인다. 2일부터 4일까지 파이빌 2층 강당에서는 지친 이들을 달랠 시와 차를 마련했다.

  강당에 발을 디딘 순간 얼그레이, 레몬,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등 다양한 차향이 섞인 미묘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영화가 소리 없이 아름다운 분위기를 낳고, 시와 어울리는 잔잔한 음악이 공간을 감싸는 시차 적응행사는 분주한 학교를 벗어난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3일 파이빌 2층 강당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차를 마시며 시를 읽고있다
3일 파이빌 2층 강당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차를 마시며 시를 읽고있다

 

  파이빌 학생운영위원회는 차와 책갈피를 나눠주며 사람들을 포근하게 반긴다. 작년 시차 적응행사에서 위로를 받았던 심소정(사범대 가교18) 씨는 올해 행사를 손수 꾸미고 있다. 운영위원들은 도서관이나 집에 있는 시집을 각자 10개씩 고르고, 시집 속 추천하고픈 시 구절이나 시집 설명을 표지 위에 덧붙였다. “방학과 개강 사이의 시차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편히 감성에 젖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 했어요.”

‘  라이터 좀 빌립시다.’ 60권의 시집 중 성현주(디자인조형14) 씨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시집을 들었다. 시를 한참 읽던 그녀는 원고지 위에 전하고 싶은 문장을 썼다. ‘누군가가 그어놓은 밑줄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오묘해진다.’ “전에 시집을 읽은 사람이 몇몇 시 구절에 밑줄을 그어놨네요. 시를 읽는 그 순간, 이 사람은 외롭고 쓸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현주 씨는 먹먹한 표정으로 이유 없는 슬픔이 나를 불심검문하는 날이 있네’, ‘허공에 한 번 피었던 것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등 지난날 누군가가 쳐놓은 밑줄에 잠겼다.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사랑편을 집어 든 진소연(생명대 식품공학18) 씨는 사랑 시를 찬찬히 읽으며 공강의 여유를 느꼈다. 시를 좋아하지 않았던 그는 이번 학기 동서양의 사랑 시과목을 수강하며 사랑 시의 아름다움에 빠졌다. “사랑의 과정에는 설렘, 행복, 슬픔 등 여러 감정이 담겨있어서, 사랑 시에서도 풍요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더라고요. 짧고 간결한 시 언어에 담긴 깊은 의미를 찾는 과정도 즐거워요.”

  한 명 한 명 파이빌에 오고 갈 때마다 직접 써내려간 시와, 시인의 말을 따라 적은 시 구절, 방문록 등 아름다운 말들이 벽 한 편에 모여, 또 다른 시집 한 권이 만들어졌다. 이날 시차적응을 경험한 이들은 저마다 감명 받은 시 구절을 마음 속 원고지 위에 꾹꾹 눌러 쓴 후 일상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글 | 최현슬 기자 purinl@

사진 | 송채현 기자 bravo@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