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혁 문과대 교수·독어독문학과
김재혁 문과대 교수·독어독문학과

 

  AI의 등장으로 인간계에 고민이 부쩍 늘었다. 예를 들어 일상에서 쓰는 외국어의 통번역은 번역기로 웬만큼 해결되는 양상이다.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했던 외국어 번역은 이제는 번역기들이 웬만큼 알아서 하고 있다. 외국어의 기계번역은 해당 문장이나 낱말의 사용 빈도수에 의존한다. 기계들은 인간의 언어습관을 그대로 모사하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아주 전문적이지 않은 영역의 번역가는 기계가 놓친 오역의 밭에서 이삭줍기를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시에서 한두 번 쓰이는 독창적인 시어는 번역기로 맥락에 맞게 제대로 번역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이야말로 인류 역사의 발전에서 소용돌이가 있었던 사이시기이다. 우리는 사이의 시공간 속에서 떠도는 중이다.

  독일에서 나온 1900년대 초반의 소설을 번역하다 보면 마주치는 어려움이 있다. “Wagen”마차로 번역해야 할지, 아니면 자동차로 번역해야 할지 잘 판단해야 한다. 당시에는 같은 도로를 마차와 자동차가 같이 다녔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다 자동차로 채워져 있어 고민할 필요가 없지만 번역자는 텍스트의 갈림길 사이에서 올바른 결정을 해야 한다. 1455년 독일 마인츠에서는 구텐베르크가 이동식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조판한 뒤 포도 압착기로 눌러 많은 부수의 성경을 손쉽게 찍어냈다. 수도사들이 수도원에 앉아서 한 자 한 자 베끼다가 양피지 한 면에 3글자 이상의 오류가 생기면 그 면을 다 버리고 기도를 한 뒤 새로 써야 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오류가 깨끗이 가신 산뜻한 성경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성경은 이제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인쇄본 성경이 나온 뒤 잠시 다시 필사본 성경으로 회귀하려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결국 흐름은 인쇄본 쪽에 가 있었다. 마르틴 루터가 1517년에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붙였던 95개조 반박문은 바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의 힘으로 당시 50만부가 인쇄되어 중세천년의 꽝꽝 얼어붙었던 얼음판을 깨는 역할을 했다. 뒤 이은 그의 독일어 성경번역은 전 세계의 각 민족어로 성경이 번역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이의 시공간 속에서 루터가 내린 결정 덕분이다. 그 전에 라틴어 성경 설교의 주된 흐름 속에서 틈틈이 독일어로 글을 쓰고 또 설교를 하면서 신을 맞이하려면 마음을 빈 벌판처럼 두라고 했던 1300년 초반의 독일 신비주의 신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여기에 주춧돌을 놓은 인물이다.

  ‘사이는 매력적이다. 독일의 문예사조 중에서도 사이공간에 위치한 슈투름운트드랑질풍노도기에는 특별함이 있다. 중세의 기독교로 고착된 사고방식에서 인간을 이성으로 해방시켰던 계몽주의에 의해 짓눌렸던 감정의 해방을 외친 젊은 괴테와 실러는 인위적 규율과 강제를 떠나 가장 인간적인 것을 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머릿속의 이상적인 이념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았던 헤겔은 이후 자신의 시대를 새로운 시대로의 이행기로 보았다.

  ‘사이는 우리에게 결정을 요구하고 사이에서 잘 선택된 결정은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책 분야에서도 지금 우리는 종이책이냐 e-Book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보통 사람들은 종이책이 영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흐름은 e-Book 쪽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제작에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했던 필사본이 종이책에 자리를 내준 지 대략 500년 만에 종이책이 서서히 자리를 뜰 채비를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아직도 종이책이 영원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아직 종이책을 사용하는 분위기와 종이책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중에 가서 종이책은 호화로운 양장을 갖춘 모양으로 호사가들의 자랑스러운 서재를 채울 가능성이 크다.

  ‘사이의 헤게모니는 결국 흐름이 쥐고 있다. 그러나 이 흐름 속에서 현상을 직관적으로 체험하여 그 체험의 내용을 능동적으로 개념화하여 손에 쥘 우리가 궁극적인 헤게모니의 주인이다. 부단히 변화하는 현상은 개념화하여 제어할 수 있을 때 길들인 짐승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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