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 상 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2019년 올해로 3.1운동이 100주년을 맞이했다. 31일은 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공휴일이기도 하여 어쩌면 삼일절의 의미를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상화 시인은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보지 못하고 1943년에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45, 독립투사들의 투쟁과 숭고한 희생 끝에 이상화 시인이 그토록 원하던 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광복의 봄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마치 날씨가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여 갑자기 추워지는 꽃샘추위가 찾아오듯 광복을 맞이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이념의 대립으로 인한 전쟁이 일어나고 분단국가라는 현실로 이어졌다. 전쟁의 아픔이 채 다 가기도 전에 독재의 그늘이 드리웠을 때는 또다시 민주화의 봄을 갈구해야만 했다. 한반도는 늘 아픔의 땅이었다. 이 모든 일들이 휩쓸고 간 그 자리에는 수많은 상처의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언제쯤 상처들이 치유되고 그 자리에 꽃이 필까. 언제쯤 한반도에 이 아픔을 녹이는 따뜻한 봄이 찾아올까.

 

이지은 (공과대 전기전자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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