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9 20:55 (수)
“팀 우승 이끌고 미련 없이 은퇴하고 싶어요”
“팀 우승 이끌고 미련 없이 은퇴하고 싶어요”
  • 이준성 기자
  • 승인 2019.04.07 2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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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박용택(경영학과 98학번) 교우 인터뷰

 

  야구는 인생이다. 9회말 2아웃에 나오는 짜릿한 역전 홈런 한 방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님을 알려준다. 수위타자도 타석에 서면 세 번 중 두 번은 아웃 당한다. 성공의 과정 중에는 실패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는 것이다. 야구는 사람들이 안고 사는 고민이자 해결책이다.

  인생과도 같은 야구가 중첩돼 인생이 야구가 된 이도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손에 쥔 야구 배트를 30년 가까이 놓지 않은 선수. 한국 야구의 전설을 매일 써 내려 가는 선수. 그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박용택(경영학과 98학번) 교우는 야구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2년 후 은퇴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정상급 기량을 발휘 중인 LG 트윈스의 박용택 선수를 잠실야구장에서 만났다.

LG 트윈스 박용택 선수는 마지막 목표로 팀의 우승을 꼽았다.
LG 트윈스 박용택 선수는 마지막 목표로 팀의 우승을 꼽았다.

 

  만능 운동 소년, 야구와 만나다

  박용택 선수는 어렸을 때부터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농구선수 출신인 아버지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덕분인지 운동을 잘해 이미 인근 학교에서 유명했다. “또래보다 키도 크고 달리기도 빨라서 거의 모든 운동을 다 잘했어요. 주변 학교의 축구부, 농구부에서도 입단 제의가 많이 왔습니다.”

  박용택 선수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1989, 재학 중인 고명초에 야구부가 창단됐다. 야구부에서도 그를 끈질기게 쫓아다녔지만, 쉬이 입부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운동선수의 힘든 삶을 알았기에 탐탁지 않아 하셨고, 아버지는 운동을 시작하려면 그게 너의 인생이 될 거라는 결심이 선 뒤에 얘기하라고 하셨어요.”

  199062일 토요일. 초등학생 박용택이 야구선수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날이다. 흔들리던 한 초등학생의 마음을 확신케 한 건 최재호 당시 고명초 야구부 감독의 한마디였다. “지나가던 저를 부르시더니 경기 중인 야구부원들을 가리키며 넌 쟤네보다 훨씬 잘 할 수 있는데 왜 야구를 안 해?’라고 하셨어요. 그날 바로 아버지에게 야구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야구를 잘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야구 천재가 기억하는 고려대

  박용택 선수의 자신감은 학창 시절 화려한 성적으로 증명된다. 박 선수는 야구 명문 휘문중과 휘문고를 거치며 청룡기 우승, 대통령배 MVP 등을 휩쓸었다. 초고교급 선수였던 그는 1998년 고졸우선지명선수로서 LG 트윈스의 지명을 받은 후 고려대 진학을 결심했다. “고등학교 졸업 전, 내가 과연 프로야구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에 진출하기 전 더 많이 배우기 위해 야구 명문 대학인 고대를 택했습니다.”

  박용택 선수의 고려대에 대한 기억 대부분은 송추 운동장에 있다.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본교 송추 운동장은 야구부에겐 캠퍼스와 마찬가지인 곳이다. “3 여름부터 꼬박 4년을 거기서 합숙 훈련을 했어요. 휴대폰도 잘 안 터지는 외진 곳이었기에 운동만 엄청나게 했습니다.” 강도 높은 훈련에 이골이 난 선수단 전원이 합숙소를 탈출했다가 스포츠 신문 1면에 실린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좋은 추억이죠. 혹독한 훈련 과정 중에서 모교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도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물론 당시에는 힘들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

  그는 정기고연전에 대한 특별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박용택 선수가 재학하던 4년 동안 고려대는 연세대와의 정기전에서 121패의 호각지세를 이뤘다. 그중 그의 기억에 가장 깊이 남아 있는 건 2000년에 있었던 정기전이다. 불세출의 투수였던 연세대 조용준 선수가 9회말 2아웃 상황까지 고려대 타선을 3피안타 무득점으로 틀어막아 점수는 10으로 연세대의 승리가 눈앞이었다. 당시 연세대 선수들은 승리를 거의 확신하고 더그아웃에서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승부는 9회말 2아웃부터라 했던가. 3번 타자 김문식 선수가 안타를 치고 나갔고, 4번 타자 박용택 선수도 몸에 맞는 공으로 진루했다. 주자 21, 2루 상황, 이택근 선수는 투 스트라이크라는 불리한 볼카운트를 극복하고 유격수 옆을 빠져나가는 적시타를 치며 11 동점을 만들어 냈다. 경기는 결국 무승부로 끝났다. 다 이긴 경기를 놓친 연세대의 분위기는 침울했고, 고려대는 승리와 다름없는 환호성과 함께 승리의 뱃노래를 만끽했다. “그날 기분이 너무 좋아서 야구장 응원단상에 올라가 웃통을 벗고 테크노댄스를 췄답니다.”

  학교를 떠난 지 18년이 다 돼가지만, 박용택 선수는 고려대의 뜨거운 응원문화 만큼은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며 눈을 반짝였다. “역시 뱃노래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승리의 노래라서 그럴까요.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고 울컥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는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본교 야구부 선수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아마추어 야구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합니다. 프로 레벨에서는 절대 성적만 보고 스카우트를 하지 않아요.” 프로 진출 전부터 결과에 좌절하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학 이후 야구선수로서 경력을 이어나가지 못하더라도 꿈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인생을 사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과정에 충실하고 과정을 즐기세요.”

 

  무대서 내려올 준비하는 한국 야구 전설

  박용택 선수는 지난 1LG 트윈스와 2년 계약을 체결하며 기간 만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작년에 양신양준혁의 종전 KBO리그 통산 최다안타 기록(2318)을 넘기고 10년 연속 3할 타율을 달성하는 등 여전히 리그 정상급 실력을 유지하고 있기에 더욱더 아쉬움이 남는다. “양준혁 선배가 3000안타까지 가라고 했는데 아쉽네요. 이제는 개인기록보다는 팀이 잘해서 우승하는 게 마지막 목표입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모두 우승을 경험해본 적 있는 박용택 선수지만, 프로 데뷔 후에는 유난히 우승과 연이 없었다. 프로 데뷔 해인 2002,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하며 LG 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뤄냈으나 삼성 라이온즈에 패해 고배를 마셨다. “한국시리즈 진출 확정 이후 김성근 감독님이 저를 꽉 안아주셨는데 아직 그게 기억에 남아요. 이후 이렇게까지 한국시리즈에 못 올라갈 줄은 몰랐습니다.”

  LG 트윈스의 성적은 2002년 준우승 이후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박용택 선수의 개인 성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야구선수들은 20대 중반에 기량이 만개하고 30대 중반 이후 성적이 하락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박 선수는 만 30세 시즌인 2009년 생애 첫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한 후, 단 한 시즌도 타율이 3할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정말 꾸준히 노력했던 게 주효했던 것 같아요. 20대 때는 닥치는 대로 노력을 했다면, 30대 때는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박용택 선수는 득점권에 주자가 나가있을 때의 타격 성적도 리그 정상급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5년 간 박용택 선수의 득점권 타율은 평균 35푼을 상회한다. “‘찬물택이라는 별명은 사실 이해가 힘들어요. 제가 뛰었던 대부분의 시즌 동안 타율에 비해 득타율이 유의미하게 높은 편입니다.”

  은퇴 이후를 생각하던 그는 불현듯 죽음을 얘기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를 떠올릴 때 드는 소름 끼치는 느낌 있잖아요. 은퇴를 생각하면 비슷한 감정이 들어요.” 40년 인생 중 30년을 야구에 충실하며 살았던 진짜 야구선수만이 줄 수 있는 답이었다. “사실 제 인생을 뒤돌아보면 야구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은퇴 이후에는 말 그대로 제2의 인생을 살겠죠.”

  박용택 선수는 마지막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으로 팬덕택’(‘팬들 덕분입니다라는 의미)을 꼽으며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앞으로의 2년은 제가 받아왔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LG 트윈스를 우승시켜 팬들에게 기쁨을 주고, 저도 미련 없이 은퇴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항상 응원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준성 기자 ma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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