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핀 풀꽃의 이름,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들의 이름을 많이 알고 계신가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테다. 주위의 다양한 동식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작은 존재에 대해 무심해지기 일쑤다. 도시인들이 점점 더 자연과 멀어지는 요즘 생태의 대중화를 목표로 매주 각지의 산과 강을 찾는 이들이 있다. 전국에 서식하는 생물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생태연구회 열두루달(회장=김진서)’의 탐사 현장을 동행했다.

지성민(생명대 생명공학12)씨가 탐사 방법과 주의사항을 부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열두루달 회원들이 카메라로 새들의 모습을 추적하고 있다.

 

  생태 지식을 다지는 세미나

  열두루달은 2012DMZ 생태계 조사연구 활동을 수행하던 대학생 연구 모임에서 시작해 20149월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열두 달 생명을 두루두루라는 뜻의 열두루달은 겨울마다 비무장지대(DMZ)를 찾아오는 두루미에서 착안했다.

  열두루달의 주요 활동은 탐사 활동과 세미나다.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세미나에서는 탐사를 진행할 생물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친숙해지는 시간을 가진다. 매주 주말에는 서울 근교로 탐사를 나가 세미나에서 다룬 조류어류곤충 등 다양한 생명체의 모습을 실제로 관찰하고 연구한다.

  지난달 11일 오후 7, 하나과학관에서는 열두루달의 세미나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조운(생명대 환경생태18) 씨는 얼레지, 노루귀, 너도바람꽃 등 남양주 천마산에서 볼 수 있는 봄 야생화들에 대해 발표했다. 이어 송재준(생명대 환경생태18) 씨가 물고기, 알고 만나자를 주제로 어류의 분류군에 대한 소개와, 어류 탐사에 필요한 준비물, 주의사항을 설명한다. 생명대 18학번인 구 모 씨는 발제자들의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이름 모를 생물들을 알게 된 시간이라 유익했어요. 특히 눈이 쌓인 곳에서도 혼자 피어난다는 너도바람꽃이 감명 깊네요.”

  김진서(생명대 생명과학17) 회장은 다양한 내용을 다루는 세미나를 통해 생물들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미나에서는 생물종의 분류군에 대한 소개 외에도 기본적인 탐사 수칙과 팁 같은 유용한 정보도 함께 공유해요. 탐사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함께하신다면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자연이 숨 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깊은 산속뿐만 아니라 서울 도심지까지, 열두루달의 탐사 영역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시가지를 배회하는 족제비, 공원에서 먹이를 찾는 새들의 이야기도 모두 열두루달의 관심 대상이다.

  427일 낮 서울 보라매공원. 조류탐사를 위해 모인 부원들을 인솔하던 김지은(생명대 환경생태17) 부회장이 발을 멈춘다. “쯔윗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솔새 같아요. 한번 찾아볼까요?” 카메라의 망원렌즈로 나뭇잎 사이를 확대하자, 선명한 줄무늬가 눈 위쪽에 그어진 새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카메라 화면에 비친 모습과 도감을 대조해보던 김 부회장이 외친다. “보여? 노랑눈썹솔새야!”

  주민들과 등산객이 주위를 바삐 지나가는 와중에도 부원들은 쌍안경이나 망원 카메라를 이용해 새들의 모습을 눈에 담는 데 열심이다. 이어서 되지빠귀, 큰유리새, 오색딱따구리도 부원들 앞에 나타났다. “조류탐사의 성과는 아무래도 탐사자의 경험과 전문성에 좌우되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초보 탐사자가 본 생물이 나중에 알고 보니 희귀종이었던 경우도 종종 있어요.”

  428일 경기도 가평의 한 하천. 이번에는 하천의 수생생물을 탐사하기 위해 열두루달 부원들이 모였다. 열두루달의 명예부원이자 탐사 기획자 지성민(생명대 생명공학12) 씨의 안전교육이 끝난 뒤, 부원들은 가슴장화를 신은 채 조심스레 물속으로 들어간다. 지 씨가 쇠 지렛대로 물속의 바위를 뒤집자, 맞은편의 부원들이 물을 박차며 생물들을 족대 안으로 몰아간다. 족대를 물 밖으로 들어 올리자 이윽고 작은 물고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성민(생명대 생명공학12)씨가 탐사 방법과 주의사항을 부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지성민(생명대 생명공학12)씨가 탐사 방법과 주의사항을 부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오오, 있어! 있어!”, “너무 귀여워!” 부원들의 관심을 독차지한 생물은 아름다운 빛깔의 비늘을 지닌 묵납자루. 지성민 씨는 부원들에게 묵납자루의 생태에 대해 설명하면서 멸종위기종이라는 주의사항을 빼놓지 않는다. “묵납자루는 산란관의 유무와 혼인색으로 쉽게 암수 구분이 가능합니다. 다만 멸종위기종의 채집은 불법이기 때문에 촬영수조에 넣어서 관찰할 수는 없죠.”

  족대를 건져 올리며 탐사를 계속하자, 흔히 볼 수 없었던 여러 수생생물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울퉁불퉁한 피부가 인상적인 옴개구리, 날렵하게 생긴 한국 고유 어류종 쉬리, 흡사 물에 떠내려가는 낙엽과 모양이 비슷한 측범잠자리의 애벌레까지. 열두루달 부원 김유준(이과대 지구환경18) 씨는 탐사에서 발견한 수많은 생물 종을 보면서 연신 눈을 반짝였다. “제대로 된 어류 탐사를 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생물 종을 많이 볼 수 있었다는 경험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이름을 아는 순간 보이는 존재들

  아직 가등록 동아리인 열두루달은 동아리방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탐사 활동을 위주로 하는 동아리 특성상 쌍안경, 포충망 같은 탐사장비를 보관할 장소가 부족해서다.

  그렇지만 열두루달은 생태의 대중화라는 목표를 위해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매 학기 공개 조류탐사를 열고, 초청강연과 사진전 등 일반 학생들도 참가할 수 있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특히 이번 공개 조류탐사 때는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인 여름 철새 저어새의 서식지를 탐사할 예정이다. 직접 눈으로 관찰하고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열두루달은 많은 사람들이 주위의 생물들에게 관심 가질 수 있길 바란다.

  김진서 회장은 열두루달의 매력을 동식물의 이름을 찾을 때 쓰는 도감에 비유한다. “도감을 찾아 이름을 알게 되면 우리는 생명체의 존재를 인식하고, 역할을 알게 돼 그 소중함을 생각하게 되죠. 열두루달은 도감처럼 사람과 자연을 연결 짓는 곳이랍니다.”

  개운산 언덕에 핀 야생화부터 철원 겨울 하늘의 독수리까지. 우리 주위 다양한 생물들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열두루달은 전국을 누비고 있다.

 

이정환 기자ec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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