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4 18:35 (금)
다른 의견이 자유롭게 뛰노는 ‘생각의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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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성 기자
  • 승인 2019.05.07 2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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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동아리 ‘코기토’

 

  목요일 저녁 8, 땅거미가 내려앉아 밤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시끌시끌했던 캠퍼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침묵에 잠긴 시간이다.

  그 순간, 어디선가 들리는 어렴풋한 목소리가 어두운 정적을 깬다. 홀린 듯 소리를 쫓아가 보면 목소리는 점점 많아진다. 그럴듯한 근거를 대가며 상대에게 각자의 주장을 설득시키려는 그들의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 차 있다. 각자 다른 의견의 목소리들이 한데 모여 있는데 제법 잘 어우러지는 게 재밌다. 토론동아리 코기토(회장=정소영)’의 매력이다.

찬성 측의 입론 발표로 '탈원전 정책 폐지' 토론의 막이 올랐다.
찬성 측의 입론 발표로 '탈원전 정책 폐지' 토론의 막이 올랐다.

 

  ‘다 함께토론을 만들어가요

  코기토에는 다 함께의 철학이 곳곳에 녹아 있다. 다 함께 참여하는 토론장을 만들기 위해 정해진 순서나 형식 없이 진행되는 자유토론과는 다른 토론방식을 채택했다. 찬반 양측 토론자의 역할을 입론, 교차조사(심문), 반박으로 나눈 CEDA토론 형식에 따라 매주 다대다(多對多) 토론을 진행한다. “100분 토론처럼 자유토론을 하면 토론 실력에 따라 발언시간이 특정인에게 치우칠 수 있는 문제가 있어 균등한 토론 기회를 위해 내린 결정입니다.”

  매주 다루는 토론의 논제도 부원들이 함께 고민해 정한다. 찬반 논거가 균등하고 어느 정도 시의성 있는 주제라면 부원 누구든 토론 주제로 건의할 수 있다. 위아래 없이 모두가 함께 논제를 고민하는 만큼 참신하고 다양한 주제들이 등장한다. 이번 학기만 해도 수료생, 학내시설 이용료 부담해야 한다’, ‘대리모 제도는 필요하다’, ‘불법 유해사이트에 대한 SDI 차단방식' 등 각양각색의 토론주제가 나왔다.

  함께이기에 토론 준비 부담도 덜하다. 상대적으로 토론에 생소한 초심자들을 위해 OB와 함께할 수 있도록 팀을 편성한다.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신입회원은 토론 이론과 유용한 기술 등을 자연스레 전수 받는다. “논제에 나오는 현상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논제에 깔린 근본적인 가치를 제대로 이해해야 핵심을 꿰뚫는 토론을 할 수 있어요.” 신입회원들에게 조언해주는 OB 박홍준(경영대 경영13) 씨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뜨거운 토론과 냉정한 피드백

  지난주 목요일 코기토의 토론장은 여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를 띠었다. 한 학기에 한 번씩 진행하는 서울대학교 말하기 동아리 다담과의 토론 교류전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탈원전 정책 폐지해야 한다를 주제로 한 이날 토론은 다담 대표 3인이 찬성 측, 코기토 대표 3인이 반대 측을 맡아 진행됐다.

  “한국에서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 발생 확률은 천 년에 한 번 정도입니다. 또한, 혹시 모를 사고에 의한 방사선 피폭 피해를 줄이기 위해 5겹의 방호벽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찬성 측 토론자 이서현(서울대 전기정보공학19) 씨가 원전의 안전성을 주장하는 자료를 제시하며 토론을 시작했다. 반대 측 토론자 조재영(경영대 경영15) 씨가 찬성 측의 의견을 날카롭게 반박한다. “원전이 위험한 이유는 혹시 모를 사고 때문이라기보다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기술이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 측 토론자 박성수(문과대 한국사17) 씨가 첨언한다. “한국은 세계 원전 밀집도 1위 국가로서 더 큰 잠재적 위험에 노출됩니다.” 이서현 씨가 곧바로 재반박에 나선다. “10년 정도 지나면 기하급수적으로 방사선 배출량이 줄기 때문에 안전한 폐기물 보관이 가능합니다.”

  찬성 측과 반대 측의 불꽃 튀는 심문과 반박이 20분 가까이 이어졌다. 우위를 가리기 힘든 팽팽한 토론이 마무리되자, 집중해서 토론을 지켜보던 청중의 박수가 쏟아졌다. 하지만 아직 남은 과정이 있다. 코기토의 토론 세션은 항상 피드백 시간 이후에야 정식으로 마무리된다. “입론할 때 수치 자료를 설명 없이 병렬식으로 나열해서 청중이 알아듣기 힘들었던 건 아쉽습니다.” 황윤하(문과대 독문17) 씨의 날카로운 피드백에 토론자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김태성(문과대 사회14) 씨는 입부 후 처음 토론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오늘 받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다음엔 더 주의해서 토론에 임해야겠어요.”

치열했던 토론이 끝나자 청중의 박수가 쏟아졌다.
치열했던 토론이 끝나자 청중의 박수가 쏟아졌다.

 

  토론장 너머에서도 코기토

  정기 토론 이외에도 코기토는 다양한 토론 관련 활동을 한다. 매 학기 MBC 100분 토론, JTBC 심야토론 등 방송 토론에 대학생 논객으로 참여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토론 전문가들의 토론을 현장에서 직접 참관하고, 질의할 기회도 주어진다.

  토론 실력이 출중한 부원들은 자체적으로 팀을 꾸려 외부 토론대회에 참가하는 경우도 많다. 출전만 하면 곧잘 좋은 성적을 거둬온다. 코기토에서 토론 이론과 기술을 깊이 있게 배우고 많은 실전 경험을 쌓은 덕이다. 코기토는 지난 9년간 42개 외부대회에서 수상했다.

  무엇보다도 코기토는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생각의 놀이터. “학기 초에 파티룸을 빌려서 함께 MT를 갔는데 술 마시며 놀다가도 결국에는 다들 자연스레 토론하고 있었어요.” 정소영(문과대 사학15)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견해 차이가 있어도 주장과 반박이 건강하게 이뤄지다 보니 다들 편하게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눈치 안 보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데가 코기토만한 곳이 없습니다!” 코기토는 다른 생각, 다른 목소리가 함께 하기를 항상 기다리고 있다.

 

이준성 기자 ma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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