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시위에 참여한 배달대행플랫폼업체 라이더들이 청와대 앞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했다.
노동절 시위에 참여한 배달대행플랫폼업체 라이더들이 청와대 앞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했다.
노동절 시위에 참여한 배달대행플랫폼업체 라이더들이 청와대 앞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했다.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 “배달보험료 현실화!”, “라이더를 리스펙(respect)!” 지난 1일 배달대행플랫폼업체 라이더 40여 명으로 구성된 라이더 유니온(위원장=박정훈)이 청와대 앞에서 창립을 선언했다. 라이더들은 연단에 서서 하나둘씩 고충을 토로했다. 박정훈 라이더 유니온 위원장은 현재 라이더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자 한다며 창립 선언 취지를 밝혔다. 배달대행플랫폼업체 라이더의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되는 중이다. 이에 노동계, 경영계,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산재보험 현실화가 우선

  노동계, 전문가뿐만 아니라 경영계도 배달대행플랫폼업체 라이더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 포럼 정책팀장은 현재 배달대행플랫폼업계는 라이더 공급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라며 라이더를 모집하기 위해 좋은 노동환경을 마련하려는 업체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을 근로자로 인정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박지순(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법을 전면적으로 개편하지 않는 이상 배달대행플랫폼업체 라이더를 근로자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현행 노동법 체계의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배달대행플랫폼업체 라이더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 사회보장제도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방법이다. 현재 사회보장제도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를 중심으로 적용된다. 산재보험의 경우에는, 근로자가 아니지만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도 제공한다. 2008년 법 개정을 통해 산업재해보상보호법 특례조항이 생기면서다. 이처럼 배달대행플랫폼업체 라이더를 근로자로 보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처우를 개선하는 법 개정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산재보험 현실화부터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재보험의 노동자 부담금을 없애고, ‘적용 제외 신청조항을 없애자는 것이다. 백승호(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배달대행업체 라이더는 위험에 크게 노출된다라이더가 산재 가입을 꺼리게 하는 현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고 필요성을 설명했다. 송민수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플랫폼 사업자가 사회적으로 많은 혜택을 가져가나 부담하는 비용은 적다더 큰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이더 유니온도 근로자와 같은 수준의 산재보험 가입을 요구하고 있다. 박정훈 라이더 유니온 위원장은 플랫폼 사업자가 적용 제외 신청조항을 이용해 라이더가 산재보험을 해지하도록 눈치를 주는 경우가 많다라이더 부담분도 없애 모두가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라이더 유니온은 배달용 오토바이 보험료 현실화 최저 배달료 법제화 정부-기업-라이더 3자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라이더 유니온 측은 오토바이 사고 시 법적인 책임소재가 라이더에 있기 때문에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현재 오토바이 보험료는 수백만 원 선이어서 배달대행업체 라이더가 가입하기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배달료 경쟁도 치열하다. 2800, 2900, 3000원으로 업체마다 배달료가 들쑥날쑥하다. 지점장이 바뀌자 배달료가 갑자기 대폭 깎인 곳도 있다.

 

  라이더 유니온은 되지만노조는 어려워

  지난 노동절에 라이더 유니온은 노조 창립을 선언했지만, 아직 법외노조상태다. ‘노조가 아니라 유니온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다. 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에서 정의하는 근로자여야 한다. 노조법은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으로 생활하는 자를 근로자로 정한다. 근로기준법 제2조보다 폭넓게 근로자를 정의한 것이다. 노조법에서 규정한 근로자는 일정 절차를 거친 후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노조법의 폭넓은 근로자 정의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도 포괄할 수 있어 보이지만, 법원의 해석은 다르다. 조성혜(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법원은 노조법에서 정의한 근로자를 근로기준법처럼 협의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배달대행플랫폼업체 라이더는 근로기준법, 노조법에서 규정하는 근로자로 아직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적법한 노조를 설립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법원의 모호한 태도를 비판하는 견해도 있다. 어떤 경우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조 설립을 인정하지만, 또 다른 경우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레미콘 기사, 보험설계사 등은 적법한 노조를 설립했다. 하지만 퀵서비스 배달 노동조합은 여전히 법외노조다. 김성희(노동대학원) 교수는 “2008년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례조항이 마련되기 전에 노조를 설립했던 직업군의 노조만 주로 법적으로 인정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배달대행플랫폼업체 라이더들이 요구사항을 주장하기 위해선, “적법한 노조를 설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배달대행플랫폼업체 라이더들이 적법한 노조를 설립하긴 어렵다. 민주노총 산하 서비스연맹 플랫폼노동연대 이성종 위원장은 플랫폼노동연대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가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이라며 외국은 라이더를 비롯한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하나씩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노동계는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 지위 인정 노동조합 설립 신고제 현실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성희 교수는 노조를 만드는 건 자기선언적 권리’”라며 국가가 이 권리를 제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경영계는 배달대행플랫폼업체 라이더가 노조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신생 산업에 과중한 부담을 안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지순 교수는 적법한 노조가 행사할 수 있는 파업권은 신생 산업 발전에 무리를 줄 수 있다배달대행업체 라이더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3권을 부여하는 건 과하다고 설명했다.

 

  노사정 머리 맞대 해법 찾아야

  노동계, 경영계와 전문가들은 모두 적극적인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데선 의견이 같다. 배달대행플랫폼 사업이 확대되고 다른 물류 분야로도 확장될 가능성이 큰 만큼, 노사정이 모여 배달대행플랫폼업체 라이더의 적절한 처우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만으로 배달대행플랫폼업체 라이더의 요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긴 어려운 것도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노조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협상력이 약할 가능성이 크다. 배달대행플랫폼업체 라이더는 탈조직화가 특징이다. 대부분 개별적으로 업무에 종사한다. 구조적으로 라이더 다수를 포괄하는 노조를 만들기 어렵다. 이직률이 높은 점도 포괄적인 라이더 노조가 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문성현) 산하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위원회에서 플랫폼 노동과 관련한 사회적 대화를 진행 중이다. 현재 민주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에 보이콧한 상황이다. 탄력근로제, ILO 핵심협약 비준 등을 두고 경영계와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어서다. 다만 이성종 위원장은 플랫폼 노동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 정의부터 노사정이 모여 논의해야 한다산업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함께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foxtr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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