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부터 각자의 바쁜 하루가 뭉게뭉게 모여 있는 2호선 열차 안. 허전한 마음을 채워 줄 아메리카노 한 잔을 위해 북적이는 정오의 스타벅스. 부딪히는 술잔 소리와 거나하게 취한 이들의 붉은 외침이 화음을 이루는 명동의 밤거리. 당신은 이 모든 곳에 있지만, 어째서인지 당신은 들리지 않는다. 겹겹이 포개진 도시의 소음 아래로 당신의 목소리가, , 당신이 묻힌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들어주는 이가 없어 괴로운가. 말 못 할 속내를 고독으로 쌓아 올렸을 그대에게 추천하고픈 장소가 있다.

  터벅터벅 명동 거리를 걷다 보면 100년 넘은 붉은 벽돌의 오랜 성당이 나온다. 현판은 없지만 이름 모르는 이 하나 없는 고딕양식의 건물. 명동성당. 솟아오른 고층 빌딩이 쉴 새 없이 반짝이는 명동 한복판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그 모습에 홀린 듯 발걸음을 향한다. 문을 열자마자 전해 오는 오래된 건물의 냄새가 은은하다. 콘크리트 빌딩에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축적된 시간만의 포근한 내음. 그리고 그 시금하게 묵은 향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높은 천정에 아치형의 복도, 햇살을 머금어 찬란하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까지. 엄숙, 웅장, 경건. 그 어떤 수식어로도 감히 본당의 분위기를 형언할 수 없다. 시간이 흘러 내부의 기운에 겨우 적응할 때 즈음, 그제야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보인다. 성당이 갖는 거룩한 숭고함과 적막한 고요가 주는 용기를 빌려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는 이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든, 십자가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든, 멍하니 앉아 상념에 잠기든, 그 누구도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다. 각자 고민을 말하는 방식이 다를 뿐,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다 같으니까.

 요즘 시대를 사는 우리는 고민을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타인의 눈에 고민이 사소하게 여겨지진 않을지, 혹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을지 하는 걱정에 속으로 삭인다. 명동성당은 고민하는 우리에게 해답을 주지는 않지만, 우리의 얘기를 묵묵히 들어준다. 30년 전 혼란스럽던 그 시절, 폭거에 항쟁하던 대학생을 묵묵히 품어주던 그때처럼 말이다.

 

글 | 이준성 기자 mamba@

사진 | 한예빈 기자 l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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