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발간한 <인간개발보고서(Human Development Report)>는 “국가 외부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으로 정의되는 전통적인 안보 개념을 “인간에 대한 위협”으로 확장했다. 안보의 주된 관심대상을 국가에서 인간으로 전환했을 뿐만 아니라, 협소한 의미의 안보 개념에서 탈피하여 경제, 식량, 보건, 환경, 개인, 공동체, 정치안보를 포괄하는 ‘인간 안보’를 주창했다. 국제정치 학계에서는 ‘인간 안보’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이유로 실증주의에 기반한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지만,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인간 안보’ 개념이 적절한 설명을 제공한다.

  1953년 한국전쟁이 종료된 이후, 세계적인 차원의 전면전이 발생하고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 발생한 냉전은 파멸적인 핵전쟁의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전략이 양국 간에 충돌을 억제함에 따라 대규모 전쟁을 예방할 수 있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강대국 간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자, 기후변화, 전염병, 식량 부족과 같이 개인을 위협하는 문제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실제로 유엔개발계획이 <인간개발보고서>를 채택한 이후 ‘인간 안보’에 대한 국제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1997년 대인지뢰금지조약이 서명되고, 교토의정서에 이어 파리기후변화협약이 2015년 채택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구체적인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25년 전 <인간개발보고서>가 규정한 7가지 항목들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하지만 클라우스 슈밥이 제창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과학기술 발전 규모와 속도는 새로운 형태의 안보 우려를 낳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하고 있는 AI(인공지능)는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직업을 불필요하게 만들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 맥킨지(McKinsey) 컨설팅 그룹이 발표한 일자리 보고서에 의하면 자동화로 인해 전 세계 노동자의 20%가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AI Superpowers>라는 책을 발간한 카이푸리 또한 15년 이내에 AI가 40~50%의 직업군을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AI 산업의 승자독식(winner-take-all) 시장 특성으로 인해 부가 소수에만 집중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한 통계에 의하면, 2030년까지 세계 GDP에 AI가 약 15조 달러를 추가할 것으로 전망하는데, 이 중 미국과 중국이 10조 달러를 가져갈 것이라고 봤다. AI는 빅데이터와 기술력, 인적자원 등을 필요로 하는데, 이와 같은 자원들이 두 국가에 집중되어 있기에 격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AI가 견인하는 ‘4차 산업혁명’은 자율주행차, IoT(Internet of Things) 등 수많은 신기술을 양산하고 있지만, 인간의 ‘일 할 권리’와 생존권을 위협하는 새로운 형태의 안보 요인이 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나는 유엔개발계획의 7가지 항목에 ‘AI 안보’를 8번째 ‘인간 안보’ 항목으로 추가하고 싶다. ‘AI 안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켜 국제적인 차원의 협력을 통해 기후변화협약, 대인지뢰금지조약과 같은 AI 규범이 마련되어 위협을 최소화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알파고를 상대하다 눈물을 보인 커제처럼 인류 전체가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김상훈 본교 석사과정· 국제대학원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