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사할린으로 이주한 우리 동포들이 운영하는 ‘새고려신문’이 폐간 위기에 처했다. 올해로 창간 70주년을 맞았지만, 사할린 한인 2, 3세대들이 우리말을 거의 하지 못하면서 자연스레 독자 수가 급감하고, 한글을 쓸 줄 아는 기자를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심지어 소련 연방이 해체된 이후 재정 지원이 끊기면서 얼마 안 되는 후원과 남아 있는 기자들의 희생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러시아 극동 사할린의 바람만큼이나 차디찬 현실이다.

  성정모 전 새고려신문사 사장을 안산의 작은 아파트에서 뵈었다. 2000년대 초기에 우리나라로 영주귀국 후 여생을 보내고 계시지만, 여전히 우리말보다 러시아어가 편하다고 하신다. 성정모 전 사장님에게 힘든 여건에도 굳이 신문을 발행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어렵사리 여쭈었다. 그러자 내 질문에 우리말로 이렇게 답하셨다. “우리 민족성, 우리말을 이어가기 위해서 해볼 때까지 해보는 거야.”

  시대가 변하며 그 위상이 떨어졌을지라도 새고려신문의 가치는 여전하다. 공산당위원회 기관지에 소속돼 선전지로 이용될 때도, 88 서울올림픽의 소식을 한인 동포에 전할 때도, 그리고 오늘날(현재는 8면 중 5면이 우리말)에도 새고려신문은 한글을 고집하며 사할린 교포들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는 낯선 타지에서 희미해져 가는 자신들의 뿌리를 이어가려는 노력이다. 그렇기에 새고려신문은 신문 발행을 멈출 수 없다.

  몇 날 며칠을 노력해 신문을 찍어내도 가판대 위에 쌓이기만 하는 우리 신문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지금 고대신문이 무슨 역할을 하고 있을까?’라며 회의감이 들곤 한다. 80년대 선배 기자들은 학생들이 고대신문을 받기 위해 홍보관 앞에 줄을 섰다고 얘기하지만, 지난 시절의 학보사 위상은 무용담으로 전해질 뿐이다. 어쩌면 선배들의 노력으로 좋은 세상을 열어준 덕분에 우리의 역할이 축소된 것은 아닐까, 하고 볼멘소리마저 나온다.

  하지만, 새고려신문이 그렇듯 ‘학보사’만이 가진 역할과 가치는 지금도 소중하다. 얼어붙은 사할린 동토에서 한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처럼, 작은 사회인 대학에서 구성원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면에 싣는 것은 언제나 학보사만의 몫이었다. 그것이 80년대에는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었을 뿐이다. 교육권 침해, 등록금을 함부로 사용하는 부패 등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독자들과 고민해야 할 사안은 아직 남아 있다. 새로운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에 고대신문은 독자들에게 지면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지면 발행을 이어간다.

 

김인철 char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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