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기준 한국에서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3%를 가져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엔 50%를 넘게 차지했다는 조사 자료도 있다. 연봉 상위 10%에 진입하기 위한 경계값은 약 6700만 원이다. 2200만 원 선인 중위값과 대조되는 수치다.

  외환위기 즈음부터 양극화 구조가 극심해지기 시작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빌미로 비정규직이 양산됐다. 비정규직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쯤 받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도 벌어져갔다. 1970년대까지 엇비슷하던 둘 간의 임금은 이제 두 배 가까이 차이 난다. 2000년대부터 대기업의 임금수준은 차츰 회복 곡선을 타기 시작했지만, 나머지의 처지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경제적 양극화는 곧 투표율의 양극화로 이어졌다. 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투표율은 29%p가량 차이가 난다. 원인은 경제적 빈곤과 함께 저소득층을 엄습하는 시간빈곤이다. 먹고 사느라 바쁘니 정치에 관심 가질 시간을 내기 어렵다. 투표일이 공휴일이어도, 오히려 그런 날일수록 바짝 벌어야 한다. 기존 정치가 주는 무력감도 한몫한다. 자신에게 별다른 효능감을 준 적 없는 정치에 희망을 품기란 어렵다. 이들은, 사실상 투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개인의 의지가 투표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계층별 투표율은 대동소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계층마다 투표율은 다르고, 저소득층일수록 투표율이 낮다. 개인의 의지보다는 환경이 투표 여부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저소득층의 낮은 투표율은 나태함 때문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정치적 평등’이다(Robert Dahl, 예일대 정치학).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이뤄진 다수결이나 합의는 반쪽짜리다. ‘1인 1표’씩 나눠주고 끝인 기계적 평등을 넘어, 모두가 ‘실질적으로’ 동등하게 정치적 의사를 표하고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 때마다 ‘투표하라’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다르게 말해야 한다. ‘모두가 투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김태훈 기자 foxtr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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