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한껏 빛을 발하는 푸른 5, 계절의 여왕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요즘이다. 4월이 잔인한 달이라는 것이 공감을 얻고 있는데, 5월은 그저 눈부신 계절일 뿐인가? 일제강점기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절규하던 시인의 목소리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1980년 서울의 봄이 군화발에 짓밟히고 광주의 비극이 발생했던 때도 바로 5월이 아니었던가.

  더불어 우리가 5월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19055월에 고려대학교의 전신 보성전문학교가 탄생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1905년 을사늑약에 의해 주권이 침탈되던 시기에 교육구국을 위해 창건된 대표적 민립대학, 보성전문-고려대학교가 자타공인 민족대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건학 당시의 이념에만 근거해서가 아니라 지난 114년의 역사를 통해 확인되고 검증된 것이다.

  학생 여러분은 무엇이 고대정신이라 생각하는가? 교육구국의 건학이념? 자유, 정의, 진리라는 교훈? 혹은 김상협 총장 이후로 많이 이야기 되는 지성과 야성?

  고대정신은 이런 문구 속에 이를 기록한 문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은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고 고대정신은 고대인의 마음속에 형성되어 마음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여러분이 고대정신을 느끼고자 하면 먼저 진정한 고대인이라 할 수 있는 선배들을 생각해보라. 또한 여러분이 그 선배들의 뒤를 잇고 나중에는 후배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

  시작은 교육구국이었다. 하지만 어찌 보성전문만이 그랬으랴!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 누구라도 그 이념에 공감하지 않았을 것이며, 어떤 학교인들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이를 추구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성전문-고려대학교의 건학이념이 빛을 발하는 것은 그것이 문서 속의 죽은 이념이 아니라, 행동하는 고대인의 마음속에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의 민족해방을 위해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 앞장설 수 있었고,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등을 통한 독립투쟁에 참여하였고, 해방 후에는 자유, 정의, 진리라는 교훈을 가슴에 새기면서 독재와 싸우고 정의로운 국가,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늘 앞장섰다.

  여러분이 독립기념관에서 혹은 4·19기념관에서 찾을 수 있는 선배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라! 그들의 순수한 열정이 대한민국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왔고, 독재권력의 압제에 굴하지 않음으로써 조국의 장래를 지켜왔다. 오죽하면 유신독재시절 박정희는 고려대학교를 휴교시키려고 대통령의 최고·최후의 권한이라 할 수 있는 긴급조치권까지 발동했을까!

  이러한 고대정신은 당시 학생회장이나 유명 교수 등 일부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고대인 모두의 공감과 동참이 있었기에 더욱 빛날 수 있었다. 특출한 몇 명의 지혜와 용기가 아니라 고대인 모두의 참여와 협력이 더 큰 빛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거창한 역사적 사건에서만 고대정신이 드러난 것은 아니다. 고대정신의 출발은 서로에 대한 애정이다. 동기간에, 선후배 간에, 나아가 사제 간에 애정이 고대만큼 끈끈한 대학은 찾을 수 없다. 더욱이 이러한 애정이 소아적인, 우리끼리만 서로 돕고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 민족 전체에 대한 애정으로 확산했기에 민족대학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았고, 역사적 사건 속에서 피 흘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설 수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지났고 사회적으로도 과거와 비할 수 없이 안정되었다. 그러나 고대정신은, 그 바탕이 되는 고대인의 후배 사랑, 선배에 대한 존중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고,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그것이 고대정신의 가장 강력한 기초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자유, 정의, 진리를 향해 고대인이 당당하게 앞장서고 이를 통해 우리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면서 세상에 기여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고대정신, 동기나 선배들의 어쩌면 과도한 관심과 애정에 대해 거북함을 느껴본 적 없는가? 만약 있다 하더라도 어쩌겠는가, 포기하고 순응할 밖에...‘호적은 파가도 교적은 못 파 간다는 노선배들의 말처럼, 여러분의 인생은 이미(?) 결정되었다. 여러분은 고대인으로서 대한민국의 엘리트로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봉사하여야 하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차진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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