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메라에 밀려 장롱에서 잠자던 애물단지, 필름카메라가 다시 시장에서 관심 상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옛 시절의 향수를 느껴서일까, 처음 보는 옛날 물건에 호기심이 생겨서일까, 필름카메라를 찾는 이들이 늘기 시작하면서 필름카메라 시장은 활기를 되찾고 있다. 터치 한 번이면 고화질 사진을 얼마든 찍을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와는 달리 다소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만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있는 필름카메라를 다시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름카메라 부활을 견인한 뉴트로(New-tro)

  필름카메라가 다시 유행하게 된 원인으로는 크게 ‘뉴트로(New-tro)’의 유행이 꼽힌다. 뉴(New)와 레트로(Retro)의 합성어인 뉴트로는 아날로그적인 정서를 찾는 문화적 흐름을 뜻한다. 패션,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레트로 감성’이 사진의 영역에까지 뻗친 것이다.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바로 확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직접 현상소에 찾아가 인화를 해야 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다. 이렇게 다소 불편하고 기다림이 필요한 과정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는 분석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디지털 카메라는 찍는 순간 즉각적으로 확인이 가능하고 인화할 필요가 없기에 쉽지만 재미가 떨어진다”며 “필름카메라는 인화를 해야 확인할 수 있고 빛에 좌우되는 우연성 때문에 디지털 카메라에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즐겨 찍는 김유진(문과대 독문17) 씨는 “필름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와는 달리 찍는 당시 초점이 맞는지, 빛을 잘 받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며 “현상을 맡기고 어떤 사진이 나올까 기다릴 때의 두근거림이 필름카메라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필름카메라를 접해본 적이 없는 젊은 세대들도 필름카메라를 찾기 때문에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 이상의 의의도 제시된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기성세대에겐 과거에 해 본 경험이지만 디지털을 베이스로 하여 살아온 젊은이들에겐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낯선 행위”라며 “필름카메라의 희소성과 우연성이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얻는다는 점도 하나의 원인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버튼 누르는 것 외에 별다른 과정이 없는 디지털 카메라와는 달리 필름카메라는 사진을 찍고, 현상, 인화까지 전반적인 과정에 참여하며 결과를 얻는다”며 “그 과정에서 오는 통제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름카메라 사용자 천유진(자전 경영17) 씨는 “바로 확인할 수 없고 필름이 얼마 없으니 좋아하는 것들을 신중하게 찍게 됐다”며 “고민해서 찍은 사진들이어서 결과물을 받아보면 실패작도 나름대로 뿌듯하다”고 말했다.

 

  젊은 층 유입으로 기지개 켜는 필름카메라 시장

  충무로, 남대문 등 카메라 거리에선 필름카메라의 인기를 더욱 실감할 수 있다. 남대문에서 ‘대보카메라’를 운영하는 김일구(남·58) 씨는 “예전엔 젊은 세대가 잘 찾지 않았는데 최근엔 학생들이 쓰기 쉽고 사용하기 편리한 필름카메라를 찾는 경우가 잦아졌다”며 “디지털카메라보다 스펙은 낮아도 색다른 결과물을 받아드는 필름카메라의 재미에 빠지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말한다.

  하락세를 타던 필름카메라와 필름 시장에 구매력을 가진 젊은 층이 유입되자 시장은 반등하는 모양새다. 더는 생산되지 않아 기존의 물량만으로 거래되는 필름카메라를 찾는 사람의 수가 증가해 가격은 점점 오르고 있다. 남대문 ‘협성카메라’ 관계자 이기범(남·59) 씨는 “필름카메라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가격이 많이 올라서 올림푸스, 니콘, 코니카 등등 똑딱이 카메라도 15만원부터 매매가가 형성된다”고 밝혔다. 비교적 높은 가격대로 인해 온라인 중고거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전대성(중앙대 사진학19) 씨는 “옛날 느낌의 색감에 반해 필름카메라를 처음 접했다”며 “오프라인 상점으로 알아보다가 시세가 더 저렴한 인터넷 중고장터로 구입했다”고 말했다.

  기존의 필름카메라를 활용한 새로운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역으로 필름카메라의 정서를 모방한 어플리케이션 ‘구닥’이 그 예다. ‘구닥’은 스마트폰의 디지털 환경에서 필름카메라의 감성을 구현한 카메라 앱으로 하루에 24장의 사진만 찍을 수 있으며 3일 후에야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구닥’을 개발한 ‘스크루바’ 강상훈 대표는 “얼마든 복제, 취소, 재실행 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다양한 옵션은 때로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며 “있는 그대로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필름카메라는 사용자가 그러한 압박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필름로그 현상소에서 기획한 ‘log platform 업그레이드’ 프로젝트 또한 필름카메라를 기반으로 한 신선한 시도다. ‘log platform 업그레이드’ 는 웹사이트에서 필름과 카메라 종류, 그리고 둘의 조합에 따라 사진의 느낌을 미리 비교해 볼 수 있어 필름카메라와 필름 선정 과정에 도움을 준다. 백경민 대표는 “현상소가 현상과 스캔만 맡는 곳이 아니라 디지털 세대가 필름에 관심을 갖게 해주고 취미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공간으로의 변모 꾀하는 현상소

  필름카메라를 잡는 이들이 늘면서 필름카메라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간 또한 늘어나고 있다. 기존에 필름 판매나 스캔과 인화만을 담당하던 현상소가 한 발 나아가 필름카메라 입문자를 위한 교육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필름카메라 입문 희망자들을 위해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하는 ‘빈티지소품샵’ 관계자는 “노출의 개념과 필름 색감을 만들어주는 기본 요소에 대해 설명을 해준 후 직접 촬영을 체험해 보게 한다”며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카메라 쇼룸도 필름카메라 판매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연남동 ‘엘리카메라’는 필름카메라 체험과 교육에 중점을 둔 체험형 쇼룸으로 탈바꿈했다. 강혜원 대표는 “필름카메라 판매보다는 카메라 전시와 체험, 교육이 엘리카메라 쇼룸의 주된 업무”라고 말했다.

  필름카메라 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도 추진되고 있다. ‘필름로그 현상소’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진행하는 프로젝트인 ‘필름자판기’는 자판기를 통해 전용 용기에 담긴 필름을 적절한 냉장상태를 유지해 판매한다. ‘필름로그’ 백경민 대표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동네 현상소와 사진관은 물론 학교 앞 문방구와 슈퍼에서도 살 수 있었던 필름을 현재는 구할 수 있는 곳이 드물다”며 “필름을 언제 어디서든 구할 수 있도록 필름자판기 펀딩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필름카메라를 하나의 문화로 정립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변주는 계속되고 있다.

 

글 | 이다솜 기자 romeo@

사진 | 한예빈 기자 l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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