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부르지 않은 세상에 와서 살아가는 일은 종종 불청객과 같은 느낌을 무겁게 안긴다. 흐린 기분에 낙담한 날이라면 지나간 시간들이 켜켜이 쌓인 을지로 뒷골목을 찾아가보자. 을지로 3가역 7번 출구를 나와 인쇄소가 즐비한 골목 사이로 들어서면 머잖아 조그마한 스티커가 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미 이 문 앞에 서성인 객이 한둘이 아닌지 옆 가게 주인이 능숙하게 길을 일러준다. 그러니 헤맸더라도 얼굴 붉힌 건 없다. 수많은 이들을 시험에 들게 한 곳, <커피사마리아>의 아기자기한 표식이 곧 당신을 반길 것이다.

  꼬불꼬불한 계단을 지나 마침내 문을 찾기까지 험난한 여정이 이어지지만 그 문 너머 장밋빛 푹신한 바닥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여유가 밀려온다. 다양한 원두 선택지를 앞에 두고 고민하고 있자면 바리스타 이민선(·34) 씨의 친절한 설명이 따라온다. “어떤 커피를 원하세요? 산미가 적은 맛? 아니면 과일 향?” 주문을 마치고 나면 산뜻한 레트로 스타일의 카페 내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벽을 장식한 알록달록한 달력을 마주한다. 일 년을 부지런히 미리 늘어놓은 달력 속 투명한 그림들은 열두 달 내내 좋은 일이 찾아올 것만 같은 예감을 전한다.

  너른 창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 속 화구들과 화초들은 밀도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뭔가를 하는 사람들을 부를 때 요리사, 의사처럼 뒤에 자를 붙이잖아요. 저도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니 커피사라는 이름을 지어봤어요.” 활짝 웃는 민선 씨가 묻는다. “어때요, 좀 괜찮나요?” 커피사가 수제드립커피를 내리는 동안 화가 이마리아(·32) 씨는 창작활동을 한다. <커피사마리아>는 마리아의 작업실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용한 분위기를 사랑하는 을지로의 예술가들은 마리아의 작업대 앞에서 조곤조곤 담소를 나눈다. 그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있자면 어느샌가 민선 씨가 커피를 가져다준다.

  아인슈페너를 시키자 적당한 산미의 커피 위에 쫀쫀한 크림이 얹혀 나온다. 너무 달지도 텁텁하지도 않은 크림은 쉬 꺼지지 않고 오래도록 제자리를 지킨다. 입가에 거품이 묻을까하는 어른의 걱정일랑 덜어두고 흐르는 음악과 함께 커피를 음미하자. 원두 내음 가득한 시간의 씨실과 날실 속, 비밀의 화원이 당신의 것이 될 것이다.

 

이다솜 기자romeo@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