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주권을 가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흔히 정의내리는 정치라는 분야는 원칙적으로는 모든 국민에게 열려있다. 그 중에서도 대학은 기존의 정치적 의사를 응집 및 표출할 뿐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담론을 형성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대학의 구성원들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학생들을 대표하는 총학생회의 탈정치화 성향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난 2월 초, 서울대학교 일반노조 기계전기분회가 파업을 위해 중앙도서관을 포함한 건물들의 난방을 중단하려 하자 총학생회가 도서관을 난방 중단 대상에서 제외해달라는 태도를 보인 사건에 대하여 총학생회의 탈정치화 성향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되기도 하였다. 총학생회가 탈정치화 당부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왜 총학생회들이 탈정치적 모습을 보여주는지에 대한 이유부터 찾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그것을 보편적인 선악의 부재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70~80년대에서 정의의 반대말은 악이었다. 당시의 대학생들에게 민주주의 원리에 반하는 군사 독재정권은 명백하고 당연한 악이었다. 따라서 총학생회는 별다른 내부적 마찰 없이, 독재타도를 외치며 구성원의 뜻을 하나로 모아 표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태일 열사로 대표되는 1970~80년대의 노동문제는 삶과 죽음의 문제였으며 인권의 본질적인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보편적으로 선한 것이었으며 대학 구성원 대부분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2019년 기계전기 노조가 서울대 중앙도서관의 난방장치를 끄면서 까지 파업을 하게 된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으로 인하여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지만, 기존 정규직들이 누리고 있는 복지혜택을 누릴 수 없기 때문에 정규직과의 평등대우를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과연 노조는 난방장치를 꺼도 되는가? 학생들 사이에도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 ‘짱구는 못말려에서 나온 명대사를 인용하자면, 2019년 지금 많은 영역에서 정의의 반대말은 악이 아닌 또 다른 정의이다. 서울대 노조 사안에서 선악을 판단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의 정당성, 기존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의 정당성 등의 문제가 선결되지 않으면 섣불리 행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힘들어졌다. 그러므로 선과 악에 대한 판별이 비교적 쉬웠던 1980년대에 총학생회가 저것은 정의롭다라고 말했을 때에는 거의 모두가 동의했겠지만, 지금은 그건 당신의 생각이다.”라는 근원적인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각자에게 자신이 주장하는 바는 의심할 필요 없이 정의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상대방에게도 정의인지는 더 이상 확실하지 않아졌다.

  총학생회는 학우들을 대표하는 기구이다. 선본은 얼마나 학우들의 의견을 대표하는지에 따른 대표성으로부터 앞으로도 학우들을 대표할 권한을 획득한다. 또한 당선 후에도 탄핵 및 불신임 등, 대표성을 상실한 총학생회에 대한 견제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총학생회는 당선 전에도, 그리고 당선 후에도 학우들의 의견을 가장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총학생회의 입장에서는 굳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의를 말하여 반대측에게 나는 너희의 생각을 대표하지 않는다.”라는 인상을 심어주기보다는 차라리 학우들 모두가 동의하는, 또는 최소한 반대하지는 않는 학생복지를 강조하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이다. 그러므로 총학생회의 탈정치화는 정치적 목소리를 표출했을 때 대표성을 잃을 위험성이 갈수록 커져가는 현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순응이다. 따라서 존립을 위해 탈정치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총학생회의 입장에서 탈정치화에 대한 당부를 논하는 것은 힘들다고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총학생회의 정치적 의사의 표출자로서의 역할이 전혀 유명무실하게 된 것은 아니다. 당장 국정농단 탄핵사태만 봐도,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의 손상에 대해 대다수의 학생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총학생회는 박근혜 정권의 탄핵이라는 정치적 의사를 힘차게 표출할 수 있었다. 따라서 구성원 대다수가 동의하는 가치를 부정하는 일이 일어나면 총학생회를 필두로 학우들이 단결할 수 있으며, 많은 학우들이 총학생회의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는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총학생회의 정치적 목소리는 양날의 검이다. 학생회 차원에서 특정 정치적 사안에 대해 의사를 표출하거나 행동을 하게 된다면 집단의 자격으로 해당 문제에 대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총학생회가 자신의 뜻과 다른 정치적 주장을 표출 하는 것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쉬워진다. 그렇다면 갈수록 충족하기 까다로워지는 대표성의 요청 하에서, 총학생회 또는 학생회가 특정 정치적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거나 정치적 행동을 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정치적인 책임은 오롯이 해당 학생회의 몫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시대가 바뀌면서 총학생회에 새롭게 부과된 책임이 아니라 총학생회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존재해왔던, 그 근원적인 대표성으로부터 나오는 당연한 책임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학우들에게 접근하고, 문제를 알리고, 설득하는 것 또한 학생회의 과제 중 하나다.

 

김태훈 (자전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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