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혁 문과대 교수·독어독문학과
김재혁 문과대 교수·독어독문학과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는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1774~1840)의 그림 중 <바닷가의 수도사>가 있다. 화폭의 반이 넘는 어두운 하늘과 막막한 바다를 마주하고 서 있는 검은 옷의 수도사의 모습에서는 두 가지가 느껴진다. 하나는 하늘과 바다를 향한 열린 세계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갈 길을 잃은 수도사의 검은 빛의 슬픈 뒷모습이다. 현실의 협소함을 벗어나 무한한 세계를 그리워하는 낭만주의적 감정 속에서 개인은 오히려 길을 잃고 있다. 프리드리히는 원래 그림 속에 들어가 있던 수도사 좌우의 두 돛단배를 지워버렸다. 수도사는 발을 잃고 그렇게 해서 화폭은 더 커지고 그리움과 열린 세계가 커진 만큼 인간의 실존적 고립감도 더욱 커졌다. 이런 양립감정이 우리 인간의 일상적 실존 상황이다.

​  어릴 적에 저녁 해가 뉘엿뉘엿 지고 이어 서쪽하늘에 푸릇푸릇 이내가 끼기 시작할 때면 어렴풋이 불안이 마음속에도 드리우곤 했다. 동네 앞마을 개울에 와서 작업을 하다 얼차려를 받는 군인들을 보면 그 불안은 더욱 짙어졌다. 그것은 어릴 때 느끼는 막연한 불안이다. 젊은 시절의 불안은 <바닷가의 수도사>처럼 광활함을 앞에 두고 있어 더욱 커진다. 세월이 저물어 불안감도 낡아졌을 법한 요즘에도 어느 날은 몸이 찌뿌둥해서 강의하기가 싫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런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어느 날 아침 아들이 어머니에게 학교 가기 싫어요.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다 나를 싫어해요.”하고 투덜대니까 어머니가 말하길 얘야, 그래도 너는 학교에 가야 한다. 너는 그 학교 교장이잖니.” 나이가 많이 먹었다고 불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영혼들이 숨 쉬는 강의실에는 희망과 불안이 공존한다만약에 뇌공학적으로 뇌에 접근하여 뇌 속의 불안과 고통을 제거한다면 인간은 행복해질까? 뇌의 무게는 보통 1400그램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속에는 뇌의 신경망이 연결되어 있고 거기서 순간순간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인간의 정신과 영혼은 이곳 어디에 숨어 있는가또 불안은 어디에 잠복해 있는가?

  독일의 낭만주의의 시인 노발리스의 <밤의 찬가>를 보면 죽음의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이 감각적으로 그림처럼 묘사되어 있다. 감각의 세계에 발을 딛고 초월을 꿈꾸는 것이 인간이다. 고대이집트의 피라미드의 거대한 구조물 속에는 신과 같은 지위를 넘보던 파라오만의 영생의 꿈이 잠들어 있다. 파라오는 죽어 그의 영혼이 새가 되어 영원의 하늘로 날아간다고 생각했다. 반면 고대 로마의 거대한 건축물과 수도교에는 실용의 정신이 흐른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보이는 것은 한 사람만의 초월에의 꿈이고, 고대 로마의 대규모 건축물에서 눈에 두드러진 것은 현실의 삶이다. 이 두 가지가 바로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며 이는 모두 인간실존의 불안에서 출발한다. 이승의 삶에는 늘 죽음에 대한 불안이 있다. 인간이 낙원, 유토피아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불안 때문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불안은 안식을 준비하게 하는 동기라고 말한다. 서양의 시인들이 성경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갖는 부분은 욥기와 시편이다여기에는 인간의 불안과 절규가 함께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불안이라는 것이다.

  평소 시로써 극명하게 자기 생각을 토로했던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한다. “너는 길을 잃었으니 네가 의지할 것은 위험뿐이다.” 감각으로 느끼는 위험은 우리 삶의 방향지시기와 같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은 죽음에 대한, 생로병사에 대한 생각이 없다. 로봇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시간 감정도 없고 불안도 없다. 반면, 무상과 불안에 대한 도전은 살아 있는 인간의 역사이다인간은 불안을 자전거처럼 타고 끊임없이 가야 한다. 발을 굴러 불안의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의 존재는 쓰러진다. 불안은 우리의 발을 움직이게 해주는 동력이며 불안의 메커니즘은 우리의 존재를 단단하게 해준다.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말로 하면 열심히 걷는 자가 마음의 만족을 얻는다. 자율과 주체적 결정이 아니라면 행복은 없다.

 

김재혁 문과대 교수·독어독문학과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