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는 내가 모니터링을 위해 접한 3개의 호수 중 가장 재밌게 읽었다. 기자들의 문제의식을 가장 잘 반영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 기사로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힘들지만 한 개의 기획으로는 가능하다는 사실 역시 일깨웠다.

  ‘필름카메라를 다룬 문화면과, ‘부실학술단체를 비판하는 대학면 등의 기사는 하나의 문제를 여러 기사로 나누고 접근함으로써 보다 심도 있은 논의를 가능하게 했다. 50대 총학의 이월금 논란 기획 역시 그랬다. 기사는 논란의 경과와 대응만을 다루는 것에서 한 발 더 나가, 총학의 소통 문제까지 지적한다. 논의를 확장하며, 기사를 전개해 가는 솜씨가 훌륭했다. 여론면에서 가짜뉴스 규제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소개한 것 역시 다양한 논의들을 펼쳐 보이며 학우들에게 사유할 거리를 던져줬으리라 생각한다.

  굳이 흠을 찾자면, 1면에 내세운 교육부 회계감사기사가 다소 아쉽다. 단순히 사건의 경과, 총학의 대응, 학교 측의 추후 계획을 나열할 뿐이다. 이에 대한 평가 등 다른 논의나 시각이 들어갔다면, 더 깊은 논의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제목 역시 그렇다. 제목은 이 글은 이런 말을 하는 글이야라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기사의 얼굴이다. 그러나, ‘교육부 회계감사 결과, 그 이후 일주일그냥 그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겠구나라는 생각 정도만 들게 할 뿐이다. 하고자 하는 말이 분명했더라면, 위와 같은 제목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랑케는 사관은 누구보다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믿으며, 사관에게 자아의 소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역사학자 EH. 카는 랑케의 주장을 부정한다. 그리고 어떤 인간도 중립적일 수 없으며 중립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순간 이미 주관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관은 끊임없이 역사를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카의 선언은 단순히 역사학을 넘어 인간은 정말 공정하게 세상을 볼 수 있으며, 반드시 그래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론적 질문을 던진다.

  언론의 본령은 사실을 던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하나의 담화를 형성하고 담론을 주도하는 데 있다. 단순히 경과를 소개하고 당사자들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기자의 주관가 문제의식이 더 드러났으면 한다. 보다 사건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해석했으면 한다. 이미 뛰어난 기사를 쓰는 <고대신문>이기에 다음 행보를 기대한다.

 

이상환 성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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