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비슷하다. 번화가 가게들은 상위 차트에 수록된 최신가요를 무한반복 재생하는 데 여념이 없다. 가수도 다르고 곡 제목도 다르지만, 비슷한 후렴에 비슷한 가사다. 반복되는 리듬에 귀는 피로하다. 황세헌(·48) 사장은 획일적이고 몰개성적인 도시의 단면을 비집고 골목 바이닐&에 자리를 잡았다. “대로변의 흔한 음악과는 다른 것을 추구하는 그의 가게는 오후 7시에 문을 연다.

 

 

 

  벽면에는 옛날 흑백 영화가 틀어져 있다. 서울의 휴일(1956). 소리도 안 나오고 자막도 없다. 턴테이블이 흥얼거리는 레코드음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턴테이블 앞에는 물씬한 잡지들이 죽 늘어져 있다. 표지에는 외국말들이 멋들어지게 적혀 있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하고 박인환처럼 말하는 것 같다. 미러볼은 부지런히도 돌아간다.

  구석 쪽 벽에는 바이닐이 빼곡 꽂혀 있다. 대략 1만여 장에 달한다. 황세헌 사장은 까까머리 고등학생 때부터 30년 동안 바이닐을 모았다. 퇴적된 시간이 벽면에 촘촘히 누층을 이뤘다. 사장은 숨죽이고 차분히 음악을 고른다. 시티 팝(City Pop)의 대가 야마시타 타츠로(やましたたつろう)부터 Earth Wind & Fire의 펑크(Funk)까지. 여러 음색이 초청된다. 음악은 모스코뮬(Moscow mule)로 붕 뜬 마음을 가뿐히 흔들어 기분은 차츰 공기 중에 부유한다.

 

 

 

  자기만의 비밀 장소도 발길이 많아지면 그다지 안 당기고, 나만 아는 노래도 유행하기 시작하면 질리는 법이다. 지루한 대로변 생활에 즐거움을 주는 건 개성적인 체험이다. “골목에선 언제나 색다르고 재미난 일이 벌어지죠.” 황세헌 사장이 골목에서 바이닐을 돌리는 이유다. 숨 막히는 도시의 획일성에서 한 뼘이라도 도피시켜주는 은밀한 청각 경험. 녹사평역 5분 거리. 신청곡도 받아준다.

 

김태훈 기자 foxtr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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