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공 묘에서 출토된 액주름. 임진왜란 직후까지 남성의 일상복으로 사용됐다.
석탄공 묘에서 출토된 철릭을 복원한 것. 조선전기이므로 상의와 치마의 비율이 1:1이다.
성재공 묘에서 출토된 누비 중치막. 임진왜란 이후 등장한 남성 의복으로, 긴 옆트임으로 세 자락을 이룬다.

  ‘오백 년의 기억, 삶과 죽음을 입다’. 본교 박물관(관장=전경욱 교수) 기획전시실에서 이번 달 2일부터 8월 23일까지 청산 이씨 문중 출토복식전이 열린다. 이번 특별전에 전시된 54점의 복식은 지난 2006년 청산 이씨 문중 묘역 천묘 중 석탄공 이기남과 부인 광산 김씨, 그리고 차남 성재공 이서용의 묘에서 수습된 수의(壽衣)와 수례지의(襚禮之衣)다.

  석탄공 묘 출토유물로 시작되는 전시관 초입에서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아청색 액주름’이다. 배성환 본교 박물관 학예사는 “보통 수의라고 하면 시신에 입히는 삼베 재질 옷을 떠올리지만, 조선시대 수의는 사자가 생전 입었던 평상복이나 예복을 의미했다”며 “그렇기에 출토 복식으로 시대별 복식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맞은편에 전시된 여성의 장저고리와 치마는 가족이나 친인척의 옷을 함께 묻은 것으로, 조선시대 상례 풍습 중 하나인 수례지의다. 배 학예사는 “수례지의란 일종의 부의(賻儀)로, 이러한 풍습 때문에 사자의 성별 및 나이와 맞지 않는 복식이 출토되는 사례가 자주 있다”고 전했다. 시신을 염할 때 손을 감싸는 악수(幄手) 한 쌍, 치아와 손톱 등을 담는 오낭 한 개, 관 내부에 까는 관내의와 지요 등의 상례 소품이 죽음의 공간을 환기하고 있다.

  시대순의 전시장 구획을 따라 석탄공부터 아들 성재공 묘 출토복식까지 둘러보면 임진왜란 전후의 복식변화가 크게 드러나는 이번 특별전의 묘미를 찾을 수 있다. 석탄공 묘에서 출토된 액주름은 조선시대 전기에 나타나는 남성 의복으로, 겨드랑이 밑 허리 부분에만 잔주름을 잡아 실용성과 멋을 살린 겉옷이다. 배성환 학예사는 “액주름은 임진왜란 이전 시기의 출토복식에 집중돼 나타나며 아들 성재공의 묘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성재공 묘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널리 입힌 의복인 중치막이 출토됐다. 중치막은 남성용 겉옷으로, 넓은 소매와 긴 옆트임을 특징으로 한다.

  한편 속에 받쳐입는 바지의 변화는 임진왜란 전후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석탄공 묘에서 출토된 바지는 바짓가랑이 끝부분인 부리가 넓은 조선전기 바지의 전형적인 형태로, 가랑이 사이가 트인 형태와 막힌 형태가 모두 발견됐다. 이와 달리 성재공 묘에서 수습된 사폭바지는 임진왜란 후 중국에서 전래된 양식으로, 부리가 좁아진 것이 특징이다. 배 학예사는 “남녀용의 형태가 똑같았던 조선전기의 바지와 달리 사폭바지는 남성용으로 사용됐다”고 덧붙였다.

  전시를 관람한 서울여대 패션산업학과 17학번인 김모 씨는 “시대 흐름을 따라 전시가 꾸려져 인상적이었다”며 “한국복식사 시간에 배운 유물을 실제로 보며 복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배성환 학예사는 “이번 특별전은 한 일가의 출토 복식 기증과 보존처리, 전시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선보인 것”이라며 “작은 문화유산이라도 특정 가문이나 개인이 소장하기보단 많은 이들이 관람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본교 박물관이 노력해온 결과”라고 전했다.

 

글|김예정 기자 breeze@

사진제공|고려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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