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출처 | 대학알리미

  2021학년도부터 고려대는 SK하이닉스, 연세대는 삼성전자와 함께 시스템반도체 부문의 계약학과를 신설한다. 졸업 후 해당 기업 취업이 보장된다는 이점으로 계약학과는 수험생과 취업준비생의 이목을 끌고 있다. 계약학과 신설로 변화하는 대학 교육환경에 ‘기업에 맞는 맞춤형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는 호평과 ‘대학의 본질과 취업시장의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중이다.

 

  산업정책 영향, 취업 보장 계약학과 증가해

  계약학과는 정부기관, 산업체 등이 대학과의 계약을 통해 개설하는 학과다. 이는 졸업 시 채용을 보장하며 특수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채용조건형’과 산업체 내의 재직자를 교육하기 위한 ‘재교육형’으로 나뉜다. 최근 이슈를 모은 것은 채용조건형 학과로 대학 학업생활과 취업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성균관대가 삼성과 합작해 2006년부터 운영하는 반도체시스템공학과가 채용조건형 학과의 대표적 예시다.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졸업 후 삼성전자의 입사를 보장하며 입학생 전원에게 2년간 전액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해당 학과에 재학 중인 최재욱(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18) 씨는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할 수 있는 점이학과 선택의 가장 큰 이유”라며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을 필요 없이 관심 분야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전체적인 교육과정이 반도체에 집중돼있다. 일례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요청으로 ‘공학수학’ 과목을 수학과와 협의해 반도체와 AI기술에 맞게 교육내용을 개편했다. 이 외에도 현장실습을 통한 실무 중심의 교육을 진행하며 산업체 진출에 어울리는 교육을 제공한다.

  최근 고려대는 공과대 전기전자공학부를 중심으로 반도체 관련학과의 설치 및 운영을 논의 중이다. 결과적으로 2021학년도부터 SK하이닉스와의 계약을 통한 반도체 관련학과 신입생 30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교육부 신고까지 완료가 됐지만, 아직 세부사항은 정해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연세대도 2021학년부터 삼성전자와 합작해 ‘시스템반도체공학과’를 신설하기로 확정했다. 2021학년도 모집 요강을 통해 수시 40명, 정시 10명을 선발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연세대 기획팀 김영숙 팀장은 “기업과 대학 측 모두 해당 분야를 집중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기업과 대학의 반도체 관련 계약학과가 늘어나는 현상은 산업통상자원부의 반도체 관련 사업 진흥 계획의 영향을 받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30일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을 통해 2030년 종합반도체 강국이 되기 위한 5대 중점 대책을 수립했다. 우리나라는 정보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해석·계산·처리 등의 역할을 하는 시스템반도체 분야는 그 경쟁력이 비교적 약하다. 이번 대책 수립은 시스템반도체 분야도 함께 성장시키기 위한 포석이다. ‘팹리스’, ‘파운드리’, ‘생태계’, ‘인력’,‘기술’의 5대 영역 중, 인력 분야에서 ‘계약학과 신설(연·고대, 21~80명) 및 단계적 확대’ 계획이 발표됐다. 비교적 발전이 더딘 분야인 시스템반도체에 특성화된 인재를 길러 국가적 산업의 경쟁력을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러한 배경에서 기업과 대학의 연계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고, 그 첫 단계가 학부 계약학과 신설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대학이 계약해 운영, 정부는 간접 지원만

  정부의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방안’에 계약학과 설치 항목이 포함되자 일부 언론은 정부의 예산지원으로 특정 대학에 계약학과를 개설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해명자료를 발표하며 계약학과 예산지원에 대해 입장을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계약학과는 대학이 산업계와의 자율적인 계약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학과이기에 정부가 그 설립 주체가 될 수 없다”며 “반도체 계약학과 설치에 관련한 정부의 예산지원 계획은 없다”고 했다.

  이후 경향비즈 ‘정부 반도체학과 밀어붙이기에 속 타는 기업들’ 기사를 통해 정부가 계약학과 개설 방안을 놓고 사실상 협의를 진행해오다가, 갑자기 예산 등의 책임을 기업에 떠넘기고 있다는 반도체 업계 관련자의 제보가 보도됐다. 정부와 계약학과에 대해 논의해 온 것을 어떤 식으로든 정부가 운영 자금에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해석했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계약학과 운영관리규정에 따르면, 계약학과는 정부의 개입 없이 산업체와 학교 간의 연계로만 이뤄진다. 이에 교육부에서도 계약학과 예산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교육부 교육일자리총괄과 엄중흠 사무관은 “계약학과는 기업이 인적·물적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대학에게 인재 교육을 부탁하고 그 비용을 기업이 지원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해당 산업의 진흥계획을 만들고 분위기 조성의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직접적인 지원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SK하이닉스 측은 정부의 예산지원에 대한 질문에 “고려대에 2021년부터 시스템반도체학과를 설치해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내용 외에는 밝힐 수 있는 점이 없다”고 답했다.

  연세대 측은 명확한 예산 조달방안을 밝히진 않았지만 계약학과에 대한 교육부의 규정을 따라 예산이 마련될 것이라고 전했다. 고려대의 경우, 아직 예산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교육부의 규정상 산업체에서 계약학과에 드는 비용의 50% 이상을 부담해야 학과의 운영이 성립된다.

 

  맞춤인재 기르지만, 교육 주도권 상실 우려도

  계약학과는 산업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타 학과들과는 구분되는 특성을 띤다. 학생들은 취업을 보장받으며, 기업도 해당 산업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학부생들을 채용할 수 있어서 서로 윈윈하는 구조다. 실제로 현재 대학에서는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지 못한다는 지적이 채용시장에서 계속돼왔고, 이에 계약학과가 하나의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 공과대 18학번인 김모 씨는 “이공계열 제조회사 같은 분야의 기업에서 하는 일은 거의 특정돼있다”며 “그 기업에서 하는 일에 대해 가장 특화된 대학수업을 듣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약학과가 대학의 전통적 목적인 학문 탐구를 뒤로 미룬 채 취업양성소의역할을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학교육연구소 김효은 연구원은 “현재 계약학과는 기업이 교육의 주도권을 일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대학이 기업이라는 외부환경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어서 취업양성소라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이 스스로 교육상을 정립해 학생들을 선발하며 교육의 주도권을 가져야 하는데, 계약학과는 기업의 요구와 인재상을 우선으로 반영하는 점이 비판받는 것이다. 실제로 계약학과 설치운영규정 제12조(교육과정의 개발 및 운영)에는 ‘교육과정은 계약학과의 특성에 맞도록 편성·운영되어야 하며, 산업교육기관은 산업체 등과 교육과정을 연1회 이상 협의하고 산업체 등의 요구사항을 반영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취업 과정에서 타 학과 학생과의 형평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이공계열 내의 일명 ‘돈이 되는 학과’만 과도하게 특혜를 받는다는 지적이다. 성균관대 공과대 18학번인 임모 씨는 “입학할 때부터 취업을 보장해주는 점, 장학금 등에서 다른 계열, 학과와 차별이 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유경쟁에 의해 인재를 뽑고 양성하고 배출해야하는데, 특정 학과의 학생들이 일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박주호(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계약학과가 늘어나고 해당 학과 학생 전체를 취업시키는 과정을 취업시장 내 특정 학교 학과의 독과점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성균관대, 경북대에 삼성의 계약학과가 설치돼있고, 고려대와 연세대에도 계약학과가 들어서면서 상위권 대학에 집중적으로 대기업 계약학과가 생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효은 연구원은 “대기업이 취업 보장 학과를 지방 쪽이 아니라 수도권명문대에 집중적으로 설치하는 것이 대학서열화를 가속 시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약학과로 인해 서열화가 더 강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다른 요소로도 서열화는 이미 공고히 돼 있고, 실제로 인프라적으로도 일명 명문대가 인재를 육성하기에 더 나은 환경이라는 것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최영섭 연구원은 “이미 보편적으로 서열화가 돼있는 상황에서 계약학과를 통해 서열화가 특별히 더 강화된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학문의 요람’이 대학의 정체성으로 자리해왔다. 이제 여기에 덧붙여 대학이 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산업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취업 즉시 활용 가능한 교육을 제공하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권병유 기자 uni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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