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오후 6시, 문과대학 서관 132호에서 ‘북핵 문제의 원인과 해법’이라는 주제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강연이 열렸다. 문과대학 연구소 협의회·통일과 국제평화 융합전공 주최로 진행된 강연에는 50여 명이 참석해 정세현 전 장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북핵에 대한 불안, 북핵 문제의 원인

  정세현 전 장관은 “1992년 주한미군 주둔 인정을 조건으로 북미 수교를 요구한 김용순 북한 전 국제비서의 제안을 미국 측이 거절했을 때부터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1990년대 공산권 국가들과 잇따라 수교하는 남한의 모습과 독일이 서독의 주도로 통일되는 것을 지켜본 북한은 흡수통일의 위협을 느꼈고,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자 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가 개선되더라도 한국군의 작전권을 가진 미국의 군사 공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있었다”며 “북한을 의심한 미국과의 수교에 실패하자 북한은 핵 개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91년 남한과 함께 비핵화 공동선언에 참여했던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며 핵무기 개발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듬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핵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부터 경수형 원자로 설비를 지원받기로 합의한다. 정세현 전 장관은 “그 당시 북한의 총발전량에 육박하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경수형 원자로 지원책은 북한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며 “미국 정찰기 요격 사건 같은 갈등에도 2003년까지 북한은 핵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3년부터 북한에 대한 신뢰를 잃은 미국이 경수형 원자로 지원을 중단하자 북한은 핵 개발에 다시 착수했다. 6자회담을 통해 2005년 핵무기 포기와 관계 정상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세계 언론들은 공동성명을 북핵문제 해결의 확실한 로드맵이라고 평했지만, 같은 해 벌어진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동결 사태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정세현 전 장관은 “강경파인 미국 재무부의 주도로 돈세탁과 위조지폐 의혹이 제기된 BDA 은행의 북한 자금 2500만 달러가 동결됐다”며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 북한은 핵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1년 뒤인 2006년 10월 핵실험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해법은 ‘북한의 불안감 불식’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며 나아질 것 같지 않던 북핵 문제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2018년 6월 12일 열린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양국은 북미수교 추진과 지속적 평화체제 구축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를 이뤄냈다. 정세현 전 장관은 “북한이 체제 유지에 불안감을 느껴 핵 개발을 시작했기에, 그 불안감을 해결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주장하며 “존 볼턴 보좌관을 비롯한 미국 관료들의 강경한 태도가 북핵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동시적이고 병행적으로 비핵화를 해결하자는 미국 국무부의 제안이 주목된다”며 “북한은 최종적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 미국의 조치에 따라 비핵화 수준을 결정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허은(문과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어떻게 시민들의 교류를 확장해 비핵화를 넘어 남북통일의 추동력으로 만들 수 있을지 질문했다. 이에 정세현 전 장관은 “당장은 어렵지만, 남북교류협력은 비핵화 문제가 해결돼 제재가 완화되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통일 역시 경제공동체를 형성해 남북의 사회문화적 동질성이 높아지면 주민투표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강연을 들은 서형훈(공과대 전기전자17) 씨는 “통일이라는 역사적이고 가장 시의성 있는 의제에 대한 현장의 경험과 지식을 얻었다”며 “국제정치 속의 본질을 보고 의사를 표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이 돼야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정환 ec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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