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연 건강할까. 우린 대개 ‘몸’의 건강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2005년부터 ‘정신건강 없이는 건강도 없다(No health without mental health)’며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역설해오고 있다. 특히나 항시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쫓기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정신질환’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제관 501호에 위치한 ‘KU마음건강연구소’는 건강한 마음을 되찾고자 방문하는 이들에게 전문적 심리 서비스를 제공하며 더욱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심리치료를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근거기반치료 통해 선진적 상담 구축

  KU마음건강연구소(소장=최기홍 교수)는 본교 문과대학 부설 연구소이자 전문 심리상담기관으로, 본교에서 유일하게 심리치료의 방법론을 연구하고 있는 기관이다. 2005년 ‘부부상담연구소’로 출발한 KU마음건강연구소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되며 우리나라에도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심리치료 연구기관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2017년 2월 현재의 모습으로 확대 개편됐다. 현재 KU마음건강연구소는 심리학 박사와 임상심리전문가들로 구성된 상담진에 의한 상담업무 뿐 아니라, 우울증과 성격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정신건강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며 심리치료의 선진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KU마음건강연구소의 주된 업무는 내담자(상담을 원하는 사람)의 특성에 최적화된 맞춤형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심리상담의 과정은 보통 내담자의 접수, 초기면접, 심리치료 제공 순으로 진행된다. 초기면접에서는 내담자가 제공한 정보에 근거해 상담평가와 심리진단이 진행되며, 이를 통해 상담가능여부를 최종 확정한다. 이후 면접결과와 내담자의 희망에 따라 상담사가 배치되고, 증상과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심리치료 서비스가 제공된다. 만약 KU마음건강연구소 내에서 내담자의 심리치료를 소화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즉시 연계기관을 통해 내담자가 적절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

  현재 KU마음건강연구소는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의 치료에 주력하고 있다. ‘사회불안장애’란 ‘남들에게 부정적으로 평가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쳐 사회적 상황에 나서기를 기피하는 심리적 어려움’으로, 작금의 청년층에서 두드러지게 발생하고 있는 정신질환 중 하나다. 특히나 대학에 갓 입학해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끼는 신입생들이나 사회활동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겪는 취업준비생 등의 대학생 내담자가 많다고 한다. 사회불안장애의 경우 인지행동치료(CBT)가 상담에서 활용된다. 인지행동치료는 스스로의 사고를 변화시켜 심리적 문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한 방법으로, 특정 상황에서 발현되는 두려운 생각이나 행동 패턴을 파악한 후 이를 교정하고 대처 행동을 훈련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사회불안장애의 상담은 개인별로 진행되는 다른 심리치료와 달리 집단 상담으로도 진행한다. 안정광 KU마음건강연구소 연구교수는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행동기법들을 배우며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며 “사회불안장애의 특성상 여러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로도 치료효과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시합 중의 ‘멘탈’을 단련하려는 운동선수들을 위한 ‘스포츠심리상담’ 프로그램도 실시하는 등, 정신건강 전반과 관련된 문제라면 모두 KU마음건강연구소에 문의할 수 있다.

  KU마음건강연구소는 학계에서의 철저한 연구를 통해 특정 심리적 장애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경험적으로 입증된 치료 방식만을 사용하는 근거 기반 심리치료(Evidence based practice)를 제공하고 있다. 극단적인 정서변화가 특징인 경계선 인격장애 환자에게는 ‘변증법적 행동치료’를, 정서적 압박감으로 인해 무기력감을 경험하는 우울증 환자에게는 ‘행동활성화 치료’를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환자의 정신과 증상에 따른 매뉴얼을 만들어 일률적이고 과학적인 치료가 가능한 미국과 영국 같은 선진국과 달리, 현재 우리나라엔 심리치료의 경우 환자의 증상에 대한 별도의 매뉴얼이 없어 기관의 자율에 모든 것을 맡겨야하는 상황이다. KU마음건강연구소에서는 국내외서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학적 검증이 완료된 맞춤형 심리치료 프로그램만을 제공하고 있다. 김나라 KU마음건강연구소 연구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에는 비전문적이고 검증되지 않는 치료방법을 사용하는 기관들이 난립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쳐 상황이 악화되거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에 검증된 심리치료를 사용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과학적 심리치료 위한 연구 활발

  KU마음건강연구소는 상담업무 외에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심리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한국형 우울·불안 평가도구 개발’이 대표적이다. 개인의 정신건강뿐 아니라 신체건강에도 직결되는 우울장애를 정확히 진단하고 선별하는 것은 환자의 치료와 예후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다만 기존에 현장에서 활용되던 CES-D(Center for Epidemiologic Studies Depression Scale, 우울증자가진단테스트)나 BDHI(Buss-Durkee Hostility Inventory, 공격성 척도 검사지) 등의 우울·불안 평가도구는 대부분 영문 문항을 한국어로 그대로 번역한 데서 그쳐 환자의 경험적인 언어가 고려되지 않고 한국인의 특수한 문항 반응 특성이 반영되지 않았다. 예컨대 서구 우울장애 환자들은 대게 ‘우울하다’라는 직접적 표현과 함께 별다른 신체 증상은 두드러지지 않은 반면, 한국인의 경우 ‘외롭다, 쓸쓸하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더불어 뚜렷한 신체 증상을 보이는 차이가 있다.

  이에 KU마음건강연구소는 외부기관과의 연계를 통한 3년간의 연구 끝에, 작년 8월 한국형 우울·불안 평가도구(K-DEP, K-ANX)를 개발했다. 집단 심층 면접을 통한 우울·불안장애 환자의 응답 집중 분석과 주기적인 전문가 자문 회의에서의 내용 타당도 점검을 통해 민감도와 특이도가 높은 평가 문항을 개발했다. 이렇게 완성된 평가도구는 현재 온라인으로 무료 배표돼, 누구든지 자신의 우울감과 불안감을 정확한 수치로써 확인하고 자가 진단할 수 있다.

  이어 2017년에는 인지치료 어플리케이션인 ‘VMPT(Verbal Memory Training Program)’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인지능력의 상실이나 사고장애를 겪는 조현병 환자나 치매환자 등을 대상으로 한 어플리케이션으로, 다양한 장르의 정보들을 시청각적으로 사용자에게 노출시켜 반응을 유도하는 ‘언어학습훈련’, ‘메시지기억훈련’ 등으로 구성된다. 김나라 연구교수는 “기존의 인지치료는 병원과 같은 특수한 공간에서 상담사와의 대면을 통해서만 진행됐다”며 “VMPT는 인지장애를 갖는 환자가 언제 어디서나 프로그램을 실행하며 스스로 재활훈련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KU마음건강연구소는 최근 ICT 기술에 기반한 노년기 활력지수(SVQ)를 개발하는 데도 한창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데도, OECD 회원국 중 전체 1위인 노인 빈곤율(45.7%)과 노인 자살율(10만 명당 54.8명)을 기록하는 등 사회적 대책이 미비한 상황이다. 아직까지도 노년기 삶의 조건과 상황을 복합적으로 반영하며 노년층에 특화된 지표체계가 국내에는 마련되지 않았다. 이에 KU마음건강연구소는 노년층의 활력지수를 측정하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 GPS를 통해 노인들의 생활반경과 생활내용 전반에 대한 주기적인 설문조사와 인지능력테스트 등을 실시해 노년층이 영위하는 삶의 질에 대한 가시적 지표를 마련할 계획이다. 안정광 연구교수는 “주기적으로 활력지수를 측정하고 관리하며, 노년층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맞춤형 프로젝트를 제작하거나 노인복지를 위한 정책적 연구를 진행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정신질환을 보는 시선 더 개선돼야

  마음의 병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의 수가 증가하며, 정신질환을 향한 과거의 부정적인 인식도 다소 개선되고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의 5대 정신질환(우울증·조울증·조현병·공황장애·불안장애) 환자는 2017년 약 166만 명으로 집계되는 등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또한 ‘2016년도 정신질환실태역학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주요 17개 정신질환의 평생유병률은 25.4%임에 반해 정신건강 문제로 한 번이라도 병원을 방문한 적 있다는 응답은 9.6%에 그쳐, 43.1%인 미국, 46.5%인 캐나다 등의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았다.

  원인으로는 우리 사회가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인식의 기저에 아직도 편견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지적된다. 김나라 연구교수는 “정신과적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언론들은 범죄와 정신질환에 일대일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도한다”며 “최근 국회에서 발의되는 정신질환자 관리에 대한 법률도 당사자들의 재활을 돕는 게 아닌, 사회에서 이들을 격리시키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대검찰청의 ‘범죄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0.136%로, 전체인구 범죄율(3.93%)의 30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김 연구교수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해소돼야 비로소 현대인들이 정신질환을 회피하지 않고, 치료와 상담에 있어 적극적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KU마음건강연구소의 목표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대중화되지 못한 근거 기반 심리치료를 더욱 확장시켜,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신뢰할 만한 심리치료를 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좁은 공간에서 소규모로 상담과 연구 활동을 진행하고 있지만, 다양한 기관들과의 연계활동과 활발한 학술활동을 통해 근거 기반 심리치료를 대표하는 전문 연구기관으로서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안정광 연구교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홀로 괴로워하고 있을 대학생들에게,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준비된 전문가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며, 혼자서 참지 말고 고민을 들어줄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줄 것을 당부했다.

 

박진웅 기자 quebec@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