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6 15:12 (화)
‘건축계의 이단아’, 공간의 일상에 비일상을 투입하다
‘건축계의 이단아’, 공간의 일상에 비일상을 투입하다
  • 이현수 기자
  • 승인 2019.06.02 2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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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  ‘빛의 교회’

  2016년 개봉한 일본의 다큐멘터리 영화 <안도 타다오>가 개봉 2년 만에 지난 4월 국내에서 개봉했다. 어느 한 인물, 그것도 한 건축가에 관한 영화가 제작되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이 시대의 가장 ‘핫’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あんどうただお)에겐 특별한 일은 아니다. ‘빛의 교회’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건축 문외한에게도 유명한 건축물이다. 제주도에 자리한 본태박물관은 그가 설계한 건물이란 이유만으로도 관광객들의 발길을 끈다. 건축계의 이단아라고 불리는 안도 다다오, 그는 과연 누구일까.

 

영화 <안도 타다오>의 포스터

  복서 청년, 건축가를 꿈꾸다

  “겨울이면 바람이 보인다 싶을 만큼 춥고 여름이면 바람이 통하질 않아 무더웠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편치 못한 그 집에서 나는 자랐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中

 

  안도 다다오는 1941년 효고현 태생으로, 무역상 집안에서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가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사람은 그의 외할머니다. 일흔여섯의 나이로 떠나기 전까지 그녀는 안도 다다오의 앞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자서전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서 그는 “그녀가 가르친 독립심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바탕이 됐다”고 밝혔다. 특히, 쌍둥이 동생을 따라 우연찮게 발을 들이게 된 복서의 길에서 드러난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격투기’도 외할머니의 가르침이다. 열일곱 살 나이에 프로복서 자격을 딴 그는 ‘순조롭게 6회전을 뛰는’ 선수였지만, 당시 일본 권투계 스타 하라다 선수의 연습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된 후 일순간 ‘권투로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깰 수 없는 벽 앞에서 안도 다다오는 복서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안도 다다오는 짧지만 많은 것을 쏟아냈던 권투 인생을 마칠 즈음에, 다니던 공업고등학교도 졸업했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흥미가 있었던 안도 다다오에게 목공소는 그의 어린 시절 놀이터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동기들이 목공소나 철물점에 취직할 때까지 그는 방황했으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주어진 15평쯤 되는 바의 인테리어 설계는 그가 건축계에 내디딘 첫발이었다. 건축주와 현장의 인부들에게 머리 조아리며 겨우 완성한 인테리어를 바라보며 그는 건축을 독학하겠다며 결심을 했다.

 

  “학력도 없고, 저축도 없다. 어딘가 기댈 만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알몸으로 사회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연전연패> 中

 

  홀로 건축을 익히기까지

  안도 다다오가 대중에게 유명해진 것은 1995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받게 되면서다. 하지만 독학을 통해 건축을 공부한 안도 다다오의 ‘이단아’ 이미지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기 충분했다. 대학의 정규교과를 밟지 않은 안도 다다오는 몸으로 부딪히며 건축을 익혀나갔다. 지식에 대한 갈증으로 대학에서 도강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그에게 대학에서 전하는 지식은 실망감을 안겼다. 그는 “학교에서는 지식을 배울 수 있지만, 그에 반해 발상의 범위를 축소시켜 버린다”며 “혼자서 배우고 혼자서 자신의 인생과 맞부딪치는 방법이 내게는 가장 어울린다”고 말했다.

  현장의 지식만큼 그에게 주요한 영향을 준 것은 ‘근대건축 거장’이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다. 10대의 마지막 무렵 헌책방에서 작품집을 통해 알게 된 르 코르뷔지에는 독학으로 성공한 건축가라는 점과 기성 체제와 싸우며 길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안도 다다오에게 큰 영감을 줬다. 안도 다다오는 르 코르뷔지에의 저서 <건축을 향하여>를 수없이 반복해 읽었고 그의 건축 도면을 수도 없이 습작했다. 안도 다다오의 첫 번째 출세작 ‘스미요시 연립주택’을 포함한 그의 건축에서 중요하게 얘기되는 ‘등치(等値)’는 르 코르뷔지에가 외치던 규질화된 공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나는 프레임이나 벽, 또는 시메트리(symmetry)한 구성이라는 기하학적인 정합성과 생활의 비정돈성 속에서, 건축에 의해 생활이 조금이나마 방향이 정해지지 않을까 하는, 어느 의미에서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新建築, Shinkenchiku> 中

 

  세계적인 건축가 ‘노출콘크리트의 거장’ 

  안도 다다오의 건축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노출콘크리트’ 역시 여러 시행착오를 통한 결실이다. 노출콘크리트는 건물 시공 시 드러나는 콘크리트에 별도의 마감처리를 하지 않고 콘크리트 자체가 가진 질감과 색상을 일부러 내보이는 것이다. 노출콘크리트 공법을 대중에 널리 알린 르 코르뷔지에와는 달리 안도 다다오는 콘크리트의 부드럽고 평활한 촉감을 건물 외벽에서 살리고자 노력했다. 콘크리트 본바탕 그대로를 아름답게 마감하기 위해 그는 최적의 콘크리트 배합을 찾고자 했으며 철근 간격에 대한 연구도 이어갔다. 또한, 그는 마감 면을 평활하게 하기 위해 거푸집에 페인트를 칠하는 등의 기술 개량도 시도하며 기술을 개발해갔다.

  안도 다다오의 이러한 노력의 집약체는 바로 그의 대표작인 ‘빛의 교회’다. 1989년 완성한 ‘빛의 교회’는 대형 프로젝트에만 눈을 돌리고 있던 일본의 건설업계 속에서 비용 문제 등의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작품이다. 오사카시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이 건물은, 직육면체 모양 공간에 15도로 비틀어진 벽이 관입하는 구조로, 별도의 마감처리 없이 오로지 콘크리트와 좌석을 이루는 거친 비계용 판자만이 쓰였다. 예배당 좌석에 앉았을 때 보이는 정면 벽에는 십자형의 슬릿(slit)이 있는데 이를 통해 바깥에서 빛이 들어오며 십자가를 보이게끔 했다.

 

“콘크리트를 건축 재료로서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리고 그것으로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건축가의 생각의 강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보편성이 특징이기 때문에 그것이 건축으로서 성립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표현하는 자의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안도 다다오, 그의 건축 이야기> 中

 

  오늘날 안도 다다오는 ‘노출콘크리트의 거장’으로 불린다. 수차례의 경험 끝에 원하는 노출콘크리트 형태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도전정신의 건축가답게 그는 여전히 노력 중이다. 균열이나 표면의 오점 등 외장재의 부재로 노출콘크리트가 가진 약점에 대해서도 보호재의 개발을 포함해 유지 관리 부분에 있어 여전히 연구 중이다.

영화 속 안도 다다오의 모습

  거리 곳곳에서 보게 되는 건축가의 쐐기

  2009년, 빛의 교회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안도 다다오는 그만의 건축세계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위치한 옛 세관 건물 ‘푼타 델라 도가나’ 리모델링 공사가 유럽의 건축가가 아닌 일본의 안도 다다오의 아이디어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비유럽권 건축가가 유럽 땅에 있는 옛 유적의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책임지게 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은 이제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 국외 작품인 ‘베네통 커뮤니케이션 연구센터 파브리카’를 비롯해 ‘포트워스현대미술관’ 등 다양하다. 제주도 ‘본태박물관’, 서울 종로구의 ‘재능문화센터’ 등 국내에서도 그의 작품은 여럿 찾아볼 수 있다. 강원도 원주의 자리한 ‘뮤지엄 산’은 그중에서도 주목받는다. 노출콘크리트 공법이 사용된 이 돔형 구조물은 오직 명상만을 위해 설계됐기 때문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국내에 있는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건축물을 방문하기도 한다.

  안도 다다오는 거리 곳곳에 건축가 자신의 주체성을 살린 작품들을 선보이는 것이 건축가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건물을 넘어서 이제는 영화, 관광 문화로 안도 다다오란 이미지가 거리 곳곳에서 향유된다. 그는 이것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글│이현수 기자 hotel@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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